전남 여수에 있는 GS칼텍스 공장 모습. GS칼텍스 누리집 갈무리
국내 석유화학 업체와 정유사들이 플라스틱의 주원료인 에틸렌 생산설비 가동률을 앞다퉈 낮추고 있다. 중국의 탈탄소 정책과 동계올림픽 개최 등으로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에틸렌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어서다.
23일 석유화학·정유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말 이후 국내 에틸렌·프로필렌 생산설비 가동률이 5~10% 가량 낮아졌다. 아직 가동률을 유지 중인 업체들도 생산량 조절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에틸렌은 석유화학 제품의 ‘쌀’로 불린다.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의 기본 원료로 활용돼서다. 에틸렌은 원유 증류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분해해 만드는데, 이 공정을 담당하는 설비가 나프타분해시설(NCC·엔시시)이다. 이 때 합성섬유 등에 쓰이는 프로필렌과 타이어 원료인 부타디엔 등도 만들어진다. 그동안 이 공정 사업은 석유화학 업체들이 해왔는데, 2018년부터 정유사들이 사업다각화를 이유로 뛰어들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돼왔다. 지에스(GS)칼텍스가 올레핀(MFC·엠에프시) 시설을 구축한 게 대표적이다.
엔시시 같은 석유화학 공정 설비는 100% 가동이 기본이다. 가동률을 낮췄다가 다시 높이는 게 기술적으로 까다롭고, 그에 따른 비용 부담도 커서다. 하지만 석유화학 업체와 정유사들은 최근 들어 엔시시 설비 가동률을 앞다퉈 낮추고 있다. 에틸렌·프로필렌을 새로운 먹거리로 꼽아 설비를 늘리던데서 벗어나 생산 감축에 나서는 것이다. 업체들은 “에틸렌 수요 감소로 가격이 내림세인데다 회복 가능성도 크지 않아서”란 이유를 댄다.
에틸렌 가격은 지난해 11월부터 하락세다. 반면 에틸렌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유가 상승 영향으로 상승세를 타면서 에틸렌 수익성 하락이 가속화하고 있다.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4일 기준 에틸렌 가격은 t당 955달러였다. 최근 10개년 평균 가격 1099달러와 비교하면 13% 가량 낮다. 10개년 평균 가격은 업계에서 에틸렌 가격 추이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같은 날 기준 나프타 가격은 t당 780달러로, 10개년 평균 가격(t당 658달러)에 견줘 18% 높다.
수익성 지표(에틸렌 가격-나프타 가격)로 보면, 지난 14일 기준 에틸렌 수익성은 t당 175달러였다. 지난해 11월 321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0개년 평균 수익성 지표(t당 441달러)와 비교하면 낙폭은 더 크다.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프로필렌 사정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기준으로 프로필렌 수익성 지표(프로필렌 가격-나프타 가격)는 t당 230달러로 10개년 평균치(t당 384달러)의 40% 수준이다.
중국 수요가 준 탓이다. 중국은 전 세계 석유화학 원료의 절반가량을 사들인다. 같은 기간 국내 수요 변동은 크지 않았다.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아시아 쪽에서 새 학기 개학을 앞둔 요즘은 학용품 수요 증가로 석유화학 원료 주문이 늘어나는 성수기로 여겨지는데 최근 시장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탈탄소 정책 강화로 석유화학을 포함한 제조업 가동률이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는 2월에는 북경 동계올림픽이 예정돼 있다. 중국 정부의 대기오염 관리 강화에 따라 제조업 가동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석유화학 업체들의 엔시시 사업 적자가 지난해 11월부터 본격 가시화하고 있다. 업체들이 최근 상황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며 북경 동계 올림픽 이후에는 수요가 살아날 것으로 봤다면 설비 가동률을 줄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엔시시 사업이 단기간에 개선되긴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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