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중순 잭슨피자를 홍보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올린 공산당 태그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잇따른 ‘멸공’ 발언 논란이 기업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 두달 전부터 이어진 정 부회장의 정치적 발언으로 10일 신세계 주가는 전일대비 6.8% 하락했고, 신세계 계열사들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정 부회장의 발언 논란은 지난해 11월 중순 빨간색 카드지갑을 들고 찍은 사진에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면서 시작됐다. 사진 촬영 당시 “빨간색이 공산당을 연상시킨다”는 주위 농담에 아무 뜻 없이 관련 설명을 달았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사드 사태로 투자 피해를 입힌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과 현 정부의 친중 분위기를 비판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정 부회장은 이후에도 공산당 발언을 고집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자사 야구단 에스에스지(SSG) 랜더스의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에도 ‘난 콩 상당히 싫습니다. 노빠구’라는 태그를 달았고, 이후 게시글에도 ‘총정리 난 공산주의가 싫다’라는 태그를 잇따라 달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정 부회장이 9일 새벽 인스타그램에 “나의 멸공은 오로지 우리를 위협하는 위에 있는 애들(북한)을 향한 멸공”이라며 “날 비난할 시간에 좌우 없이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다 같이 멸공을 외치자”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재점화 됐다. 이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까지 등판해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는 모습으로 정 부회장의 게시글에 호응하며 정치권까지 멸공 논란이 번졌다. 정 부회장의 이날 게시글은 ‘좋아요’ 7만개를 받았고, “정치권 눈치 안 보는 기업인의 모습이 멋집니다”, “멸공을 응원합니다”는 호응 댓글 수백개가 달리기도 했다.
정 부회장의 멸공 발언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비판도 쇄도했다. ‘보이콧 정용진,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란 포스터가 커뮤니티 누리집에 공유되면서 신세계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졌다. 그룹 계열사인 이마트와 스타벅스에 가지 말자는 글까지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온라인상에서 거론된 불매운동 제안이 실제 행동으로 확대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신세계그룹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신세계 주가는 전일 대비 1만7000원(6.8%) 하락한 23만3000원에 마감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도 5.34% 내린 13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하루만 신세계는 1670억원, 신세계인터내셔날은 530억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신세계 주주들은 네이버 주식 게시판 등에 주가 하락 상황을 “정치적 발언으로 발생한 사주 리스크”라고 해석하며 “대기업 사주로서 기업 경영과 무관한 정치적 발언은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니 중단해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정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홍콩의 유력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에도 보도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업계에선 “새로운 유형의 오너리스크”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형 유통사의 한 간부는 “정 부회장이 소셜미디어상에서 적극 소통하는 이미지로 얻은 긍정적 효과보다 발언을 잘못해 그룹 전체에 준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며 “온라인 사업에 적극 투자 중인 신세계의 상황상 소셜미디어에서 대표 발언은 기업 전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유통사 관계자는 “소셜미디어를 하다 보면 자신의 글에 대한 호응이 사회 전체의 반응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처음엔 정 부회장의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는데 논란이 커지는데도 계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75만명이다.
신세계그룹 내에서도 정 부회장의 발언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신세계 관계자는 “아무 의도없이 올린 공산당 글이 온라인상에서 과대해석되면서 문제가 커진 것 같다”면서도 “정 부회장도 논란을 감안해 더는 멸공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멸공 발언 논란이 거세지자 이날 오후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멸공은 누구한테는 정치지만 나에게 현실”이라는 재반박글을 올렸다. 그는 “사업가로서 그리고 내가 사는 나라에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매일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마음을 얘기한 것”이라며 “사업하는 집에 태어나 사업가로 살다 죽을 것이니 정치 운운 마시라”고 말했다. 멸공 발언이 정치권으로 번지며 정 부회장의 정계 진출 가능성까지 제기된 것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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