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출기업들의 화물을 싣고 부산항을 떠나고 있는 선박. HMM 제공
2021년 12월13일 낮 12시께 정부가 긴급 보도자료를 냈다. “(조금 전) 11시36분 집계 결과, 올해 수출액이 기존 최대치(2018년 연간 6049억달러)를 돌파했다.” 이 순간에 어떤 수출 물량이 관세선(국경 등 관세부과 경계선)을 통과하면서 통관 기준 연간 최대 수출실적을 경신했다는 뜻이다. 2021년 연간 수출규모는 64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추계했다.
아침부터 이 속보를 미리 준비하던 정부는 공교롭게도 같은 날 아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교역·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전략적 가치,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위상을 종합 고려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생산·소비 인구 5천만명 경제에서 1인당 소득수준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소비자들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위장 용량은 한계가 있다. 대륙과 바다 곳곳을 컨테이너 선박과 항공기로 건너고 항해해 ‘한국산 물건’을 팔아야 한다.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래 1964년 수출 1억달러, 1977년 100억달러, 1995년 1천억달러 ‘달성’이 굵고 선명한 한국무역 66년사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 산업경제가 체질과 구조에서 대외지향 체제를 점점 더 공고히 해왔음을 보여준다.
‘주식회사 한국’은 개발연대 초기부터 수출상품의 기획·생산·유통 생태계를 구축해 1962년 국외 수출시장 개척을 위한 대한무역진흥공사(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를, 1992년 한국수출보험공사(현 한국무역보험공사)를 세웠다. 나중에 두 기관 이름에 ‘투자’가 덧붙거나 ‘수출’이 빠진 사정에는 수출의존 체제에 대한 경쟁국들의 견제와 우리의 민첩한 대응이 있었다.
“수출 1천억달러 달성 시점 전후로 1990년대 들어 외국 기업과 정부가 ‘한국 정부가 민간 수출기업에 각종 정책보조금을 지원해 수출 가격경쟁력을 도와주는 불공정행위를 하고 있다’고 자주 트집 잡았다. 그래서 우리 수출 유관 기구가 남의 나라에 제품을 파는 수출진흥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외국인 ‘투자’ 유치도 하고 외국 상품 수입을 진작하는 일까지 포함한 일반 ‘무역’ 업무를 하고 있다고 대외에 표방한 것이다.”(정부 통상당국자)
한국처럼 제조업 거의 모든 산업·업종에 걸쳐 주력 수출제품을 거느리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드물다. 무역통상 강대국들은 한국을 ‘경제발전 과정에서 수십년간 자유무역 수혜를 입은 대표국’으로 여긴다. 더 많은, 더 큰 폭의 수입시장 개방에 나서라고 한국을 압박할 때 내세우는 논리다. 그래서인지 수입상품의 불공정무역행위를 조사·판정하는 무역위원회가 미국산·유럽산 수입제품에 막대한 반덤핑 관세부과 같은 ‘철퇴’를 내리는 수입규제 조처를 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통상 당국자는 “우리는 수출로 먹고살고 국제 자유무역 질서에서 오랫동안 수혜를 입어왔다. 그런 우리가 상대국 수입 제품에 수입규제를 발동하기란 어렵다. 섣불리 대응하면 자칫 더 큰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여러 힘겨운 처지와 조건을 뚫고, 특히 오직 자국의 이익 관철만을 꾀하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역통상 세계에서 ‘6400억달러’는 경이롭다. 우리 경제는 외환·금융·코로나19 등 각종 위기 때마다 수출이 빠르게 반등하면서 경기를 되살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일까?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결, 세계경제 변동에 취약한 과도한 무역의존도 탈피와 내수 성장기반 경제로의 재편을 주창하는 정책담당자·정치인·경제전문가를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