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한상의 제공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에스케이실트론 사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와 관련해, “저희가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필요한 조치나 상황들을 고민해볼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송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같이 밝혔다. 최 회장은 “이미 회사 입장을 발표해서 제가 따로 입장을 이야기할만한 건 없다고 생각하며, 저희로선 아쉬운 결과지만, 내 욕심대로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공정위의 제재 발표 직후 열렸다. 공정위는 이날 최태원 회장이 에스케이실트론 지분을 인수한 것은 지주회사 에스케이㈜의 사업기회를 가로챈 것이라고 결론짓고 에스케이㈜와 최 회장에게 과징금 각 8억원씩 총 16억원을 부과했다. 에스케이그룹은 이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이제 (공정위) 발표가 나왔으니 우리도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고치고, 대응할 부분은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에스케이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의 이 발언과 관련해 <한겨레>와 통화에서 “그룹이 낸 입장문과 의미가 다르지 않다. 회사 규정이나 제도상 미비한 부분이 있으면 손보겠다는, 원론을 얘기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경제 전반의 상황과 관련해선, “수출, 소비가 위축될 줄 알았는데, 안 그랬고, (다만) 미-중 갈등, 탄소중립(사안)은 좀 심각해졌다고 보인다”고 짚었다. 우리나라의 “성장 ‘포텐셜’(잠재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방역체계가 앞으로도 잘 작동한다고 보면 내년도 경제전망은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내수나 대면 서비스 업종은 어려울 것이고, 해외에 계속 나가지 못해 여행, 항공사는 어려워 명암의 차이가 있겠지만 경제 전반은 그렇게 나쁘게 보진 않는다.”
반도체 수급 불균형, 글로벌 공급망 문제도 화제에 올랐다.
최 회장은 “공급망 재편이 반도체 업계에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험으로 작용하는 것도 있다”며 “반도체 수요는 견조하게 지속될 것이고 반도체 공급이 달리는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공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그는 “반도체, 배터리와 관련된 것들은 대한민국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며 “외교, 국방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안보라는 다른 사고와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국가가 안보문제로 접근한다. 유럽, 미국은 이 이슈를 국방부에서 다루고 있다. 전통적인 사고를 떠나 경제 안보도 국방 문제로 보고 있고, 자기 나름의 정책을 낸다는 거다.”
최 회장은 “공급망 재편을 보면 전 세계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고, 게다가 탄소 문제까지 얽혀 있다”며 “나라끼리 싸우는 이슈가 아니라 지구의 운명까지도 생각하고 방향을 바꿔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급망 재편은 “미-중간의 갈등에서 헤게모니 싸움으로 바뀌는 과정 중에서 파생되는 형태였는데, 나중에는 (탄소 문제까지 들어오면서)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최 회장은 덧붙였다.
탄소중립 목표를 너무 급격하게 높인다는 업계의 우려에 대해선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벌금, 세금을 내게 하겠다는 정책만으로는 목표가 달성될 수 없다”며 “민·관이 힘을 합해서 탄소를 줄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다면, 훨씬 더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저출산” 문제를 들었다. 인구가 줄고 있어서 “내수산업, 젊은층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고 성장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내수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통적인 사고 구조를 바꿔야 한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공급한다’는 게 대한민국 성장 모델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나라의) 많은 인구가 대한민국을 방문하게 하는 관광산업을 키운다든지, 새로운 돌파구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싶다. 단지 제품을 만들어서 밖에 파는 것만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에 와 있고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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