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 발달로 인해 사람의 능력을 능가하는 로봇이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충격> 저자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로봇이 사람을 지배하고 위협하는 상황을 걱정하기보다 오히려 사람이 로봇화하는 것을 진짜 걱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발간된 <리엔지니어링 휴매니티>라는 책을 소개하며, 인간성 개념이 현재의 기술적 환경에서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을 다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빌라노바대 교수(법학)인 저자 브렛 프리시맨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정보기술 환경에서 사람이 점점 로봇화하는 현상에 대한 경고를 쏟아냈다.
그는 “우리는 편리와 효율성에 굴복해 맺은 계약서대로 수행하고, 단순한 기계와 구별되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다”며 오늘날의 기술, 사회, 경제, 교육, 정치, 문화 시스템이 우리를 디지털 기술에 강하게 의존하기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가 우리를 기계화한 인간이라고 만드는 환경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편리한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아무도 읽지 않고 동의하는 장문의 서비스 약관부터다. 우리는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계약서를 쓰고 인간을 기계화시키는 현실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디지털 도구와 서비스는 이음매와 마찰 없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게 특징이다. 스마트폰에서 서비스 성공의 주요요건은 단절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서비스 전환 비용을 줄이고 이용자에게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의 핵심이다. 그래서 디지털 도구와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람은 설계자가 요구하는 단추 누르기와 같은 가장 단순한 동작만을 반복하거나 허용된다.
프리시맨은 인간은 기계와 달리 마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멈춰 생각할 기회가 필요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해 성찰할 틈이 필요하다. 다양한 계층과 집단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도 마찰이 있어야 각 집단의 존재를 서로 깨닫고 적절한 협치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기계가 생각하는 능력을 갖췄는지를 판별하는 기준이 ‘튜링테스트’를 뒤집어서, 사람이 얼마나 기계스러운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역튜링테스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계를 두려워하기에 앞서, 사람이 얼마나 기계처럼 행동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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