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지인이 중학생 자녀가 영어 숙제를 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낸 얘기를 했다. 아이는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해 영작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영작 숙제를 하지 않겠다”는 아이의 다짐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얼마 전 만난 서울의 한 여자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난감한 상황을 토로해 왔다. 전공 학생들에게 불어 작문 과제를 내주면 이따금 일부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번역기를 사용해 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교수 눈에는 번역기 사용 여부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학생을 불러 교수가 지적을 하면 학생들이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학생들의 태도가 지난해까지와 달라졌다. 번역기로 과제를 한 학생들을 불러 잘못을 지적하면 그동안의 학생들과 달리 올해 가르친 학생들은 상당수가 “그게 왜 잘못됐는데요? 번역기를 쓰는 게 왜 안 좋은 것인가요?”라고 반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덕분에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확대됐고, 구글과 네이버의 번역 품질도 개선됐다. 교수는 뜻밖의 반발을 접하면서 교수법 고민에 빠졌다고 말했다. 번역 도구의 발달로 인해 기존의 교육방법을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수학 교육에서는 전자계산기와 수식계산 소프트웨어 등장으로 일찌감치 경험한 문제다. 고교 시절 수학 교사는 “미국 학생들은 전자계산기를 이용해 수학 문제를 푸니 한국 학생들과 수학 실력이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한동안 인도에선 구구단 대신 19단을 외운다며 21세기에 암산능력 교육 강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점점 편리해질 번역 프로그램과 수식계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정보와 서비스는 늘어나고 할 일은 넘쳐난다. 호모 파베르인 인간이 더 개선된 도구를 만들어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학습과 교육은 지금 당장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얻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용자가 도구의 작동 원리를 배우고 익혀야 나중에 더 효과적인 도구를 만들어내어 쓸 수 있다. 도구가 똑똑해지고 강력해질수록 그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이 제대로 알아야 현명하게 도구를 쓸 수 있다. 자동번역 시대에도 번역기의 결과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소중한 능력이 될 것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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