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보내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로마시대의 대시인 오비디우스는 “여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고 말했는데,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그의 사람됨과 취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휴가를 맞아 어떤 이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어떤 이는 조용한 휴식을 선택한다. 공통점은 일상에서 누리기 어렵던 경험의 선택이다. 호기심 많은 이들은 여행을, 분주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휴식을 선호한다.
휴가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여유를 안겨주지만 때로 아쉬움도 안긴다. 기다려온 즐거움이 끝났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더 만족스럽게 휴가를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여가가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여가는 누구나 그냥 누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올바른 교육을 받아야만 즐길 수 있는 교양인의 영역이다. 의무와 걱정으로부터 해방돼 스스로 시간과 활동의 주인이 되는 여가를 만족스럽게 보내려면 절제와 지혜가 필요한데 이는 교육과 훈련 없이는 어렵다는 얘기다.
행복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디지털 환경에서 휴가를 보내는 현대인들에게도 여가의 본질을 일깨운다. 일상의 의무와 관계로부터 떠나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연결돼 있어 휴가다운 휴가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통신망을 통한 직장과 업무적 연락의 단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휴가자 스스로 여가를 비일상적 경험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상시연결 네트워크 속에 있으면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뛰어난 성취와 통찰을 보여주는 이들의 힘의 배경이 휴식과 여가라는 것을 이따금 엿보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취리히에서 강의와 상담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볼링겐이란 곳에 소박한 돌집과 집필실을 짓고 수시로 명상에 들어갔다. 볼링겐 집필실은 프로이트와 차별화하는 융 정신분석학의 산실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는 1년에 두번 오두막에 머무는 생각주간을 갖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는 1년에 한달씩 명상에 몰입하는 안거에 들어간다. 잇달아 역작을 내놓은 종교학자 배철현 서울대 교수도 경기도 가평군 호숫가에 살면서 일주일에 사나흘 두문불출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휴가는 일상의 자유를 안겨주지만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하여 습관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선택의 가치를 일깨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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