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디지털 기술은 휴가지 풍경을 바꾸고 여행자 휴대품 가짓수를 늘리고 있다. 셀카봉이 ‘2014년의 발명품’으로 인기를 끌더니 이내 유행이 지나갔다. 최근 스키장이나 관광지에서는 고프로와 드론 촬영, 그리고 360도 카메라를 이용한 역동적 동영상을 담는 게 유행이다. 여행 도구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통신과 검색을 넘어 기억을 의존하는 ‘제3의 두뇌’가 된 스마트폰은 으뜸가는 여행 필수품이다. 업무용이던 로밍 서비스는 이제 여행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디지털 기술은 여행자들에게 도구와 휴대품의 변화를 넘어, 여행 경험 자체를 달라지게 만든다.
최근 각각 제주도와 유럽을 여행하고 온 두 사람의 지인을 만났는데, 서로 비슷한 여행담을 들었다. 여행지에 가서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연결되어 있는 탓에 멀리 떠났지만 떠나온 것 같지 않았으며 평소처럼 지인들과 소통하며 지냈다는 얘기는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었다.
제주도를 다녀온 친구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강박감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여행을 앞두고 미리 여행정보를 알아보고 여정을 짰는데, 이번에는 “현지에서 검색해서 해결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고 별 준비 없이 가볍게 길을 나섰다고 말했다. 그런데 제주로 가는 길과 현지에서 검색을 통해 접하게 된 정보가 너무 많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려웠다는 얘기였다. 그는 모처럼 여행인 만큼 ‘꼭 찾아야 할 맛집’과 ‘꼭 가봐야 할 명소’를 주로 가보려 했는데 왜 그리 맛집과 명소가 많은지 선택하느라 고민스러웠다고 ‘강박감’의 정체를 설명했다.
유럽을 여행하고 온 지인은 여행지에 대해 미리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간 것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먼저 여행한 사람들이 소개한 이름난 관광지와 맛집을 따라가서 남들처럼 멋진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했다는 얘기였다.
정보화로 편리한 도구를 지니고 많은 정보를 얻게 됐지만, 쏟아지는 정보와 기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부담스러워지는 상황을 만난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에서 유명한 ‘잼 고르기’ 실험을 통해, 선택할 것이 많으면 고통스러워진다며 미리 스스로 원칙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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