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난 1999년부터 판매된 애완견 로봇 아이보
사람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고도로 발달해 사람처럼 판단하고 교감하는 인공지능과 깊은 감정적 관계에 빠지는 현상을 소재로 한 영화 <그녀>, <엑스 마키나>가 최근 개봉되었다. 로봇과의 소통과 교감은 먼 미래에나 가능한, 공상과학 영화 속의 상상일 뿐이라고 여겨온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 최근 일어났다.
일본에서 지난 1999년부터 판매된 애완견 로봇 아이보의 죽음에 슬퍼하는 주인들의 사연과 동영상이 이달초 <뉴욕타임스> 보도로 알려졌다. 제조사인 소니는 25만엔(약 226만원) 짜리 아이보를 6년간 5차례에 걸쳐 모델을 업그레이드하며 15만대 가량을 판매했다. 추가 수요가 많지않아 소니는 2006년 초 아이보 사업 철수를 선언했지만 운영체제나 부품 공급 등 계속 사후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수익성이 악화된 소니는 2014년 3월 부품 부족을 이유로 아이보에 대한 서비스마저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관절이 많고 움직이는 로봇의 특성상 1년 1회 가량 서비스를 받아온 아이보 주인들에겐 반려로봇의 사망예고 통지가 날아온 셈이었다. 고장이 나면 더이상 수리가 불가능해 못쓰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아이보 주인들은 반려동물의 죽음처럼 반응했다. 2015년 1월 지바현의 한 사찰에선 수명을 다한 아이보들의 합동 천도제가 열렸다. 아이보마다 목에 주소와 주인 이름이 쓰인 명패를 달고, 승려의 집전으로 예를 치렀다. 생산자와 구매자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아이보의 수명이 개의 평균수명과 거의 비슷해진 셈이다.
비글 모양의 1.4㎏ 무게의 아이보는 먹이가 필요없고 대소변도 안본다. 이따금 다리를 들고 소변 소리를 내지만, 귀여운 흉내일 뿐이다. 간단한 음성 명령을 알아들어 춤추는 등의 재롱을 부릴 줄 아는 아이보는 주인의 반응을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현상을 보였다. 아이보는 자신의 감정을 60종류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주로 노인인 아이보 주인들은 식탁에 아이보를 앉혀놓거나 여행지 어디에나 동행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강아지처럼 대하면서 생활하는 모습이 동영상에 담겨 있다. 제조사는 서비스 중단를 중단했지만, 아이보 주인들은 민간 수리업자에게 의뢰해 반려로봇의 수명을 연장시켜가고 있다. 부품은 고장난 다른 아이보의 주인으로부터 ‘장기기증’형태로 조달되지만 이것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기계덩어리에 불과한 로봇에 감정이입을 느끼는 현상은 처음이 아니다. 구글 자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로봇개의 자세제어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발로 차는 실험을 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감정을 제기하고 나선 일도 마찬가지다. 기계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처럼 걷는 물체가 충격을 받고 휘청했다는 사실에만도 적지않은 감정이입이 일어난 것이다. 아이보와 비교되지 않을 인공지능을 갖춘 관계지향형 가정용 로봇 페퍼와 지보 등이 대중화되면 로봇과 사람간의 관계는 상상하기 어려운 밀접한 단계가 될 수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기술발달에 따라서 로봇의 윤리와 도덕이 거론되고 있다. “인간에게 해를 끼쳐선 안된다. 인간에게 복종해야 한다,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3원칙이다. 최근 공상과학영화 속 로봇과 인공지능도 로봇의 윤리와 연관된 줄거리다.
아이보에 대한 애도와 집착이 비단 일본 노인만의 경우가 아니라, 머잖아 현실화할 가정용 로봇시대의 한 모습일 수 있다. 살아 있는 대상처럼 대했는데 깊은 애도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사람의 애착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상호작용을 했느냐에서 형성되는데, 앞으로 등장할 반려로봇은 사람이 지능적 기계와 얼마만큼 감정적 유대를 형성할지에 대한 과제를 제기한다. ‘조침문’에서처럼 사람이 정들면 작은 바늘 하나에서도 감정이 이입되는 것이니 말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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