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 착륙과정에서 3명이 숨진 아시아나항공 214편
지난 14일 일본 히로시마 공항에서 아찔한 착륙사고가 발생했다. 아시아나항공 162편이 착륙 도중 활주로를 이탈해 풀밭에 반대방향으로 처박힌 것이다. 항공기 몸체와 착륙시설 일부가 파손되고 비상용 슬라이드가 펼쳐진 현장 사진은 사고 당시의 긴박함을 말해준다. 활주로 300m 앞 6m 높이의 전파발신 시설이 충돌로 부숴지고 항공기 보조날개 2개와 왼쪽 엔진 등이 파손됐지만, 다행히 사망자가 없었다. 사고로 히로시마공항은 며칠간 폐쇄됐고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 등은 16일 현지를 찾아 착륙시설 손상에 대해 사과했다.
조사가 진행중이라 사고 원인이 공식 발표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번 착륙사고는 악조건의 기상상황과 함께 자동화 기기에 대한 의존이 사고 배경으로 거론된다. 니컬러스 카가 <유리감옥>에서 역설한 자동화 기술 과잉의존에 따른 위험성을 드러낸 사례로 지목된다.
사고 여객기는 착륙 당시 뒷바람 때문에 평소 방향과 반대로 활주로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입했는데, 이 경우 공항의 계기착륙장치(ILS) 신호를 이용할 수 없다. 히로시마공항은 ‘카테고리3(CAT3)’의 정밀도 높은 계기착륙장치를 갖추고 있어 악천후에서도 착륙이 가능하지만, 활주로를 반대편으로 진입할 때는 착륙각도 등을 알려주는 이 기기가 무용지물이 된다. 이때는 착륙보조장치의 도움없이 조종사가 판단해 수동착륙해야 한다.
위험하고 복잡한 일을 사람이 처리할 필요없이 컴퓨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안전하게’수행되도록 하는 ‘자동화’는 기술의 미래다.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런 머스크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중화되는 미래에는 “인간이 자동차를 모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를 불법화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지난달 한 행사에서 발언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공하는 가장 최근 통계인 2010년 한해 전세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중국(27만5983명), 인도(23만1027명), 한국(6784명) 등 약 124만명에 이른다. 교통사로로 해마다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규모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중화될 미래에는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는 ‘위험한 행위’는 극히 제한된 조건 아래에서만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기술발전은 눈부시다. 2004년 미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가 첫 무인자동차대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132㎞ 완주에 성공한 팀이 없었지만, 2014년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110만㎞ 무사고운행에 성공했으며 세계 주요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자동차에서 운전자의 판단과 조작을 대신하는 자동화 기술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에어백이나 미끄럼 방지 브레이크(ABS) 작동, 정속주행(크루즈 컨트롤) 기능 등에 이어 최근에는 자율주차와 차선이탈 및 충돌 방지 기능을 장착한 차량이 늘고 있다. 사람이 운전할 때 판단과 조작 미숙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해, 탄생한 자동화 기술이다.
엘리베이터도 오늘날처럼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운전원이나 안내원이 탑승해 조작을 전담했다. 무인운전과 자율운행은 자동차에서는 실험단계이지만, 항공과 우주 분야에선 이미 실용화된 기술이다. 사람이 탑승해 조작하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조작 미숙과 실수로 일어나는 결과가 치명적이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자동화·무인화 기술이다.
2009년 2월25일 네덜란드 스키폴공항에 착륙하다가 9명의 사망사고를 낸 터키항공 1951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14일 미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무인 우주화물선 드래건이 국제우주정거장에 에스프레소머신 등 2t의 물품을 배달하는 데 성공했다. 일런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선 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X)가 미 항공우주국(NASA)와 맺은 12회 우주정거장 화물운송 계약에 따른 사업의 일환이다. 자동화와 무인조종이 우주선에서 실용화된 것을 고려하면 일반 비행기나 드론과 같은 무인항공기에 유사한 기술이 적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항공운항은 자동운전(오토파일럿), 자동착륙(오토랜딩) 시스템 등 자동화 의존이 높은 분야다. 편리하고 안전하지만 자동화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채 수동 조종능력이 퇴화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자동화 기기가 오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빈틈이 생기는 경우, 또는 자동화 시스템과 정보를 잘못 읽는 경우의 경우다. 2013년 7월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 착륙하다가 활주로 앞 방파제를 들이받으면서 3명의 승객이 숨진 아시아나항공 214편 사고, 2009년 2월25일 네덜란드 스키폴공항에 착륙하다가 9명의 사망사고를 낸 터키항공 1951편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항공사고 조사전문가들이 아시아나 214편 사고를 전형적인 ‘자동화 중독(automation addiction)’ 사고로 본다고 보도했다.
이 사고 직전인 2013년 1월4일 연방항공국(FAA)은 항공사들에 ‘안전 경고’를 보내 “항공사들이 적절할 때에 조종사들에게 수동 비행을 홍보할 것을 권장하라”고 안내한 바 있다. 조종사들이 자동조정 장치를 너무 의존해 긴급한 사태가 발생해서 자동비행 상태가 풀리면 수동으로 여객기를 몰아야 하는데 수동비행 경험이 많지 않으면 상황을 오판하고 적절한 대처를 못해 대형사고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가 안내문의 배경이었다.
2009년 1월15일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미국 유에스(US)에어웨이스 1549편
자동화 시대에도 여전히 기기를 수동으로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항공사고다. 2009년 1월15일 뉴욕 라과디아공항 이륙 직후 새떼와의 충돌로 2개의 엔진이 모두 정지해 동력을 상실한 채 추락하던 미국 유에스(US)에어웨이스 1549편의 사례다. 공군 조종사 출신 기장 체슬리 슐렌버거 3세는 참사가 예고된 상황에서 허드슨강에 기체손상없이 수평착륙하는 노련한 조종술로 155명 탑승객 전원을 생환시킨 ‘허드슨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자율운행 자동차는 머지않아 실용화되겠지만 그렇더라도 상당기간 사람의 운전 기술은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니컬러스 카는 <유리감옥>에서 “노동력을 줄여주는 기계는 일을 대체하는 역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들의 역할, 태도, 기술을 포함해서 전체적인 일의 성격을 바꿔놓는다”고 말한다. 카는 “자동화에 대한 안심(의존)과 편향(맹신)은 과실과 태만이라는 그릇된 행동에 빠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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