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2011년 2월 IBM의 컴퓨터 ‘왓슨’은 퀴즈프로그램 <제퍼디>에서 퀴즈쇼의 영웅으로 불려온 제닝스와 러터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미 1997년 체스용 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었지만, 퀴즈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기까지는 그 뒤로도 14년이나 걸렸다.
왓슨의 승리가 주목받은 이유는 컴퓨터가 ‘퀴즈쇼’라는 게임에서 사람을 능가했다는 것 이상이다. 단순 기억, 연산, 정보 호출이 아니라 복잡한 질문을 이해한 뒤에 스스로 사고를 통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의 두뇌 작용과 유사한 기능을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다는 인공지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플 때 증상을 얘기하면, 컴퓨터가 알아듣고 신속한 진단과 처방을 해줄 수 있고, 어떤 것이 합리적 선택인지를 고민하며 결정장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컴퓨터가 적절한 판단을 도와줄 수 있게 된다. 왓슨은 <제퍼디> 규칙에 따라 외부 도움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대결을 벌였다. 왓슨은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았고, 내장 메모리의 능력만을 활용했다.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퀴즈챔피언보다 똑똑한 답변을 내놓는 세상이 왔다는 현실에 과학자들은 놀라고 환호했지만, 보통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압도한다는 것을 이미 실감하고 있던 까닭이다. 검색을 하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스마트폰에서 음성인식 기능도 새로울 게 없는 시점이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가 퀴즈챔피언을 뛰어넘었다는 데 놀랐지만, 일반인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이미 그 기능을 활용하고 있었다. 구글과 네이버의 성공도 인터넷세상에서 검색과 질문이 갖는 의미와 영향력을 제대로 알고 적합한 기능을 제공한 덕분이다.
인터넷은 퀴즈챔피언과 일반인의 구분도 희미하게 만들었다. 검색 한번이면, 웬만한 정보를 전문가 못지않게 그 자리에서 획득할 수 있다.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여겨져온 일들도 자동화 알고리즘과 결합한 정보기술에 의해 고유한 전문성이 위협받고 있다. 복사기가 만인을 출판발행인으로 만든 것처럼, 인터넷은 만인을 기자와 언론매체 발행인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누구나 기자이자 발행인이 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무엇이 중요해질까?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헛소리 탐지기(crap detector)를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와 언론에도 필수적인 기능이다. 인터넷 검색은 우리에게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주고, 사용자는 어떤 사실이든 금세 확인할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정보를 지식과 지혜로 만들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분석과 성찰을 통한 사고과정이 필수적이다. 정보를 얻는 방법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해지고 편리해졌다. 그 덕에 엄청난 양의 사실과 정보가 넘쳐난다. 과거처럼 수고로운 연구와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관련 전문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여기게 해주는 세상이다. 헤밍웨이가 강조한 ‘헛소리 탐지기’가 누구나 기자이면서 작가일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더 절실해졌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라이프 잡지 표지에 실린 헤밍웨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