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마이 타임스’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스마트폰과 SNS의 쓰임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송년 풍경이 나타나고 있다. 1년 동안 사용자가 SNS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나, 친구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표시한 콘텐츠를 자동편집해서 보여주는 서비스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이 연말을 맞아 선보인 ‘당신의 한 해’ 서비스는 사용자가 1년간 올린 콘텐츠 가운데서 인기가 높았던 사진과 글을 월 단위로 정리해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사진을 대표 이미지로 선정한다. 또 ‘마이 타임스’란 서비스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1년간 활동한 내용을 신문 형태로 자동 편집해서 보여준다.
특별한 조작 없이 클릭 한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1년을 손쉽게 정리해보고 있다. 자신이 올린 페이스북 콘텐츠 중 가장 많이 공유되고 ‘좋아요’가 달린 내용을 보기 좋게 편집해주고, 각자를 신문 1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사용자가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들은 무엇인지, 계정을 가장 자주 방문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보여주니 사용자들도 몰랐던 자신의 지난 1년간 활동 내역을 알게 된다. 사용자들의 활동 내역에서 두드러지는 콘텐츠를 골라 순식간에 편집해내는 알고리즘에 대한 사용자들의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당신의 한해’ 알고리즘은 모두에게 행복한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다. 미국의 저명 웹디자인 컨설턴트인 에릭 마이어는 지난 6월 뇌암으로 6살 생일에 딸 레베카를 잃었다. 페이스북은 마이어에게 딸의 생전 사진을 보여주며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본 설정된 메시지를 계속 보내며 아픈 상처를 자극했다. 마이어는 12월24일 자신의 블로그(http://meyerweb.com)에 글(Inadvertent Algorithmic Cruelty)을 올려, 페이스북의 의도하지 않은 잔인함을 고발했다. 마이어는 “알고리즘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없다. 알고리즘은 특정한 결정 흐름을 본뜨지만, 일단 작동시키면 사유 과정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생각 없는 알고리즘에 우리의 삶이 내맡겨져 있다며,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면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일련의 기계적 자동처리 절차인 알고리즘의 단면을 드러냈다. 문제의 근원에는 페이스북에서의 모든 감정적 표현과 반응을 ‘좋아요’ 단추로만 표현하도록 하는 페이스북의 기본 구조가 있다. ‘싫어요’나 ‘슬퍼요’ 단추가 없어, 사용자들은 친구가 부모상을 당하거나 비탄에 빠졌다는 글을 올려도 ‘좋아요’를 눌러대고, 알고리즘은 가장 많이 ‘좋아요’를 받고 공유된 콘텐츠를 골라내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발행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정교한 알고리즘 기술을 통해 디지털 세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스마트폰과 일체화된 우리들의 삶은 갈수록 이러한 알고리즘의 지배와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로봇과 알고리즘의 커져가는 힘을 사용자가 인식하고 좀더 인간적 기준을 제시해나가지 않으면, 기계에 우리를 맞추는 위험한 경우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에릭 마이어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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