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에서 컴퓨터 네트워킹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4년 아이네트를 창업해 국내에 인터넷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터넷 시대를 앞당긴 허진호씨가 최근 8년 동안 맡아온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크레이지피시라는 게임회사를 세워, 소셜게임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허 전 회장은 “여러가지 사업을 해왔지만, 모두가 늘 플랫폼 사업이었다”고 말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인터넷기업협회장 물러난 허진호 대표
[한겨레가 만난 사람]
허진호(49)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 회장이 최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03년부터 회장을 맡았으니 무려 8년을 인터넷기업들을 대표해온 셈이다. 인터넷기업협회는 말 그대로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들인 엔에이치엔(NHN), 다음,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 등 포털 업체를 비롯해 전자상거래업체, 게임업체, 디지털 콘텐츠업체, 통신업체 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이익단체이다. 인터넷 업계의 ‘전경련’쯤에 해당할 것이다. ‘인터넷 강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업계를 대변하고 또 스스로 다양한 인터넷 사업을 펼쳐온 허 전 회장을 만나 한국 인터넷 기업의 현주소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8년간 협회를 맡았는데, 처음엔 어떻게 회장을 맡게 되었나?
“2003년 인기협 회장을 선임해야 하는데, 대표적 인터넷 기업인 다음과 엔에이치엔의 창업자인 이재웅씨와 이해진씨는 나이가 어려서 나에게 나서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도 당시에는 인터넷 기업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망설였으나, 결국 맡게 됐다.”
당시 허 회장은 기업들에게 서버와 통신회선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위해 아이월드라는 업체를 세워 현재의 아마존닷컴과 유사한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포털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인기협 회장을 권유에 의해 맡게 된 것은 인터넷 업계에서 ‘허진호’라는 이름 석자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는 1994년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네트’를 설립해 국내에 본격 인터넷 시대를 열어젖힌 주인공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영기업이던 한국전기통신공사(현재 케이티)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코넷이라는 인터넷 연결서비스 제공에 나섰지만, 아이네트는 민간기업으론 처음으로 인터넷 연결 서비스에 나서며 국내 인터넷 벤처의 길을 열었다. 그가 아이네트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 확인되자 삼성, 엘지, 에스케이, 현대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인터넷 서비스업에 뛰어들었다.
인터넷 벤처 1호 기업을 세워 큰 성공을 거둔 벤처기업가가 인기협 회장을 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8년이나 회장을 맡게 된 데는 ‘인터넷 전도사’라는 그의 상징성이 크게 작용했지만, 사실 인기협 회장 자리가 썩 ‘인기’가 높은 자리가 아니었던 점도 작용했다. 일 많고 말도 많은데 별로 빛이 안 나는 머슴 같은 자리. 나름 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없으면 오래 맡기 어려운 법이다. (허 전 회장의 후임은 박주만 지마켓 대표이다.) 인터넷 실명제, 벤처 산업 옥죄는 ‘전봇대’
페이스북·트위터 등 새 사업 뒤처지게 해
“관료들, 규제 만드는 일에는 정말 창의적” -인기협 회장을 맡고서 역점을 둔 일은 무엇이었나? “협회를 맡고 보니 부실한 예산 구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인기협은 예산의 90% 가까이를 정부 프로젝트를 통해 조달하고 있었다. 다른 협회들도 보니 대부분 정부 예산이나 기금에 의존하거나, 정부로부터 인증이나 자격증 부여 서비스를 협회가 위탁받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었다. 정부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재정 독립이 먼저라고 봤다. 그래서 회원사들의 반대를 딛고서 회비를 통한 예산 조달로 협회의 운영 구조를 바꿨다. 그렇게 구조를 바꾸고 난 뒤에야 인기협이 하고픈 일도 하게 됐고, 정부로부터 협상 상대로 인정도 받게 됐다.” -인기협이 인터넷 업계에서 대형 포털들을 대변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협회가 포털협회이지, 인터넷기업협회냐는 지적과 비난의 소리까지 들었다. 지난 3~4년간은 중소 인터넷업체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인터넷 업계에는 너무 큰 이슈들이 이어져서 작은 기업들까지 챙겨가면서 전체의 목소리를 전달하기가 벅찼다.” 그가 인기협 회장을 맡은 기간, 국내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개똥녀 사건’ ‘5살 꼬마 ‘미쳤어’ 노래 저작권 위반’ 등 인터넷이 매개가 된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업계는 인터넷 실명제,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보호 등의 풀기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다. -인터넷 규제를 인기협이 효과적으로 막아냈다고 보는가? “정부 정책과 관련해 인기협 역할은 실제론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 정도로 막은 것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다. 인터넷 규제는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고 10여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져온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사문화되었던 전기통신사업법의 허위통신 조항을 적용해 미네르바를 구속한 것에서 보듯,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고도 기존의 법 적용을 통해 이번 정부에서 인터넷 규제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는 규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한국 정부의 관료들은 “정말로 창의적”이라고 비꼬았다. “중국이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위해서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을 보면서는 말문이 막혔을 정도다.” 그는 인터넷 규제와 관련해 인기협의 역할에 대해 한편으론 자괴감이 들 정도이지만, 그나마 반대하지 않았다면 검색사업자법이나 포털미디어법과 같은 황당한 입법안들도 현실화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왜 인터넷에 그러한 규제 시도가 잇따랐다고 보는가?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문제가 불거졌을 때 토론을 통해 근원적 해결을 시도하는 문화가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인데, 독재에 비하면 단기적으로 비효율적이다. 합의과정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만, 이를 거치면 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매우 효율적이 된다. 우린 반대의견을 경청하며 새로운 사회적 합의틀을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그가 특히 인터넷 업계의 이해가 걸렸다고 보고 규제에 반대한 문제는 인터넷 실명제였으나, 이는 실패로 끝났고 국내 인터넷 산업을 옥죄는 핵심 규제로 기능하고 있다.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 도입 때 2년여 동안 정부에 업계의 요구와 논리를 많이 설명했지만, 좌절을 느꼈다. 관료들이 나서서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을 국민에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식으로 국민을 대상화한다는 점과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꿰맞추기 식으로 나머지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제대로 분석을 하지 않고 논리적 접근을 하지 않은 결과, 인터넷에서 문제가 된 일련의 사건들은 개인정보 노출이 핵심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실명제라는 식의 논리적 점프가 일어났다.” -하지만 공청회 같은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고, 국내법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만들어진 것 아닌가? “무슨 일에든 정부 책임으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언론의 지적이 나오고 하니,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중국의 경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차단돼 있다. 이는 중국식 절차에 따라 진행된 ‘적법’한 것이지만, 이게 과연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것인가?” 1인기업 지원책, 있으면 좋지만 정답 못돼
인터넷 인프라 구축·정부 개방정책이 우선
“업계, 이용자 주민번호 수집 가장 잘못한 일” -국내 인터넷 기업에 실명제가 적용되면서 어떤 일이 생겨났나? “결과적으로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본인확인제, 게시글 모니터링 의무화, 결제시 액티브엑스(X) 등의 규제로 인해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네이버와 다음의 경우, 모니터링 인원만 각각 1000명이 넘는 규모다.” -실명제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하루 방문자가 10만명을 넘는 규모를 갖춘 사이트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신규 서비스에도 영향이 있나? “어느 서비스가 10만명도 안 되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겠나? 어차피 나중에 다 도입해야 하고 모니터링을 적용해야 하니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나라보다 앞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한 한국에서 허 회장 재임 기간 동안 어떠한 새로운 서비스들이 출현했나? “안타깝게도 없다. 그동안 나라 바깥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모바일인터넷, 아이튠스, 앱스토어 등이 출현했다. 국내에서 안착한 신규서비스는 네이버 블로그 이후 사실상 없다. 나머지 국외 서비스를 모방한 서비스 등은 안착도 못한 채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가 발명한 서비스를 갖고 국외에서 크게 성공한 것이 여럿이다. 대표적인 게 네오위즈 세이클럽에서 선보인 가상캐릭터 아바타 모델이다. 이제 한국에는 새로운 서비스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업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국에 전혀 관심이 없다. 싸이월드 시절엔 세계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를 주목했다.” -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들이 성장하지 못했다고 보나? “내부 역량 부족도 있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가 실리콘밸리와 크게 다르다. 미국에선 벤처캐피털이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도와주지만, 우린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 자본시장의 선진화가 시급하다.” -인터넷 업계가 가장 잘못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것이다. 처음부터 관행적으로 받았고,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가입이 불가능한 서비스도 꽤 있었다. 2007년 아이핀을 도입하게 되면서 업계에 주민등록번호를 가입 확인 때 한번만 사용하고 버리자고 제안했으나, 업계 반대로 무산됐다. 다음과 네이버 모두 전자상거래에 진출했는데, 전자상거래법상 거래자 신원을 보관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이젠 어떤 사업자도 이를 버릴 수 없게 됐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업가를 키워내겠다며 지원책을 언급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미국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나라’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실리콘밸리에 대한 지원책을 언급하지 않는다. 1인 창조기업, 소프트웨어기업 지원책, 제2의 빌 게이츠 만들자는 얘기 없다. 오로지 인프라로서의 교육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정부의 개방성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이런 정책들은 3년 안에, 즉 자신의 임기 안에 거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업계 진흥 정책에 회의적이다. “1인 기업 지원정책 같은 것이 없는 것보다 낫지만, 근본적인 답이 되지 못한다. 정부에서 내놓는 대부분의 지원책은 6개월~1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문서로 보고될 수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진흥책보다 새로운 서비스 출현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있다는 동기만 유발되면 가리지 않고 나타나게 되어 있다. 중간에 이를 좌절시키고 막는 관행이 문제다.” -2009년 8월 아이폰이 국내 위치정보법 규제에 묶여서 도입 중단 고비를 맞았을 때, 인기협은 아이폰 출시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 “세계는 아이폰으로 모바일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당시 국내 모바일 콘텐츠업계는 거꾸로 3년 연속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세계 유일한 사례였으며, 그야말로 질식상태였다. 정부의 규제로 아이폰 도입이 막히지만 않았어도 1년~1년반 앞서 국내에 출시됐을 것이다.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도 애플로 인해 먼저 위기를 겪었겠지만, 그만큼 대응도 앞섰을 것이다. 다행히 국내에 뒤늦게나마 모바일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국내에도 게임, 소셜네트워크, 모바일을 중심으로 창업자들이 다수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 벤처 1호 기업을 세워 큰 성공을 거둔 벤처기업가가 인기협 회장을 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8년이나 회장을 맡게 된 데는 ‘인터넷 전도사’라는 그의 상징성이 크게 작용했지만, 사실 인기협 회장 자리가 썩 ‘인기’가 높은 자리가 아니었던 점도 작용했다. 일 많고 말도 많은데 별로 빛이 안 나는 머슴 같은 자리. 나름 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없으면 오래 맡기 어려운 법이다. (허 전 회장의 후임은 박주만 지마켓 대표이다.) 인터넷 실명제, 벤처 산업 옥죄는 ‘전봇대’
페이스북·트위터 등 새 사업 뒤처지게 해
“관료들, 규제 만드는 일에는 정말 창의적” -인기협 회장을 맡고서 역점을 둔 일은 무엇이었나? “협회를 맡고 보니 부실한 예산 구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시 인기협은 예산의 90% 가까이를 정부 프로젝트를 통해 조달하고 있었다. 다른 협회들도 보니 대부분 정부 예산이나 기금에 의존하거나, 정부로부터 인증이나 자격증 부여 서비스를 협회가 위탁받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었다. 정부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재정 독립이 먼저라고 봤다. 그래서 회원사들의 반대를 딛고서 회비를 통한 예산 조달로 협회의 운영 구조를 바꿨다. 그렇게 구조를 바꾸고 난 뒤에야 인기협이 하고픈 일도 하게 됐고, 정부로부터 협상 상대로 인정도 받게 됐다.” -인기협이 인터넷 업계에서 대형 포털들을 대변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협회가 포털협회이지, 인터넷기업협회냐는 지적과 비난의 소리까지 들었다. 지난 3~4년간은 중소 인터넷업체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인터넷 업계에는 너무 큰 이슈들이 이어져서 작은 기업들까지 챙겨가면서 전체의 목소리를 전달하기가 벅찼다.” 그가 인기협 회장을 맡은 기간, 국내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개똥녀 사건’ ‘5살 꼬마 ‘미쳤어’ 노래 저작권 위반’ 등 인터넷이 매개가 된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업계는 인터넷 실명제,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보호 등의 풀기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다. -인터넷 규제를 인기협이 효과적으로 막아냈다고 보는가? “정부 정책과 관련해 인기협 역할은 실제론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 정도로 막은 것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다. 인터넷 규제는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고 10여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져온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사문화되었던 전기통신사업법의 허위통신 조항을 적용해 미네르바를 구속한 것에서 보듯,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고도 기존의 법 적용을 통해 이번 정부에서 인터넷 규제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는 규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한국 정부의 관료들은 “정말로 창의적”이라고 비꼬았다. “중국이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위해서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을 보면서는 말문이 막혔을 정도다.” 그는 인터넷 규제와 관련해 인기협의 역할에 대해 한편으론 자괴감이 들 정도이지만, 그나마 반대하지 않았다면 검색사업자법이나 포털미디어법과 같은 황당한 입법안들도 현실화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왜 인터넷에 그러한 규제 시도가 잇따랐다고 보는가?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문제가 불거졌을 때 토론을 통해 근원적 해결을 시도하는 문화가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인데, 독재에 비하면 단기적으로 비효율적이다. 합의과정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만, 이를 거치면 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매우 효율적이 된다. 우린 반대의견을 경청하며 새로운 사회적 합의틀을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그가 특히 인터넷 업계의 이해가 걸렸다고 보고 규제에 반대한 문제는 인터넷 실명제였으나, 이는 실패로 끝났고 국내 인터넷 산업을 옥죄는 핵심 규제로 기능하고 있다.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 도입 때 2년여 동안 정부에 업계의 요구와 논리를 많이 설명했지만, 좌절을 느꼈다. 관료들이 나서서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을 국민에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식으로 국민을 대상화한다는 점과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꿰맞추기 식으로 나머지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제대로 분석을 하지 않고 논리적 접근을 하지 않은 결과, 인터넷에서 문제가 된 일련의 사건들은 개인정보 노출이 핵심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실명제라는 식의 논리적 점프가 일어났다.” -하지만 공청회 같은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고, 국내법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만들어진 것 아닌가? “무슨 일에든 정부 책임으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언론의 지적이 나오고 하니,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중국의 경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차단돼 있다. 이는 중국식 절차에 따라 진행된 ‘적법’한 것이지만, 이게 과연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것인가?” 1인기업 지원책, 있으면 좋지만 정답 못돼
인터넷 인프라 구축·정부 개방정책이 우선
“업계, 이용자 주민번호 수집 가장 잘못한 일” -국내 인터넷 기업에 실명제가 적용되면서 어떤 일이 생겨났나? “결과적으로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본인확인제, 게시글 모니터링 의무화, 결제시 액티브엑스(X) 등의 규제로 인해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네이버와 다음의 경우, 모니터링 인원만 각각 1000명이 넘는 규모다.” -실명제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하루 방문자가 10만명을 넘는 규모를 갖춘 사이트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신규 서비스에도 영향이 있나? “어느 서비스가 10만명도 안 되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겠나? 어차피 나중에 다 도입해야 하고 모니터링을 적용해야 하니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나라보다 앞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한 한국에서 허 회장 재임 기간 동안 어떠한 새로운 서비스들이 출현했나? “안타깝게도 없다. 그동안 나라 바깥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모바일인터넷, 아이튠스, 앱스토어 등이 출현했다. 국내에서 안착한 신규서비스는 네이버 블로그 이후 사실상 없다. 나머지 국외 서비스를 모방한 서비스 등은 안착도 못한 채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가 발명한 서비스를 갖고 국외에서 크게 성공한 것이 여럿이다. 대표적인 게 네오위즈 세이클럽에서 선보인 가상캐릭터 아바타 모델이다. 이제 한국에는 새로운 서비스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업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국에 전혀 관심이 없다. 싸이월드 시절엔 세계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를 주목했다.” -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들이 성장하지 못했다고 보나? “내부 역량 부족도 있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가 실리콘밸리와 크게 다르다. 미국에선 벤처캐피털이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도와주지만, 우린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 자본시장의 선진화가 시급하다.” -인터넷 업계가 가장 잘못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것이다. 처음부터 관행적으로 받았고,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가입이 불가능한 서비스도 꽤 있었다. 2007년 아이핀을 도입하게 되면서 업계에 주민등록번호를 가입 확인 때 한번만 사용하고 버리자고 제안했으나, 업계 반대로 무산됐다. 다음과 네이버 모두 전자상거래에 진출했는데, 전자상거래법상 거래자 신원을 보관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이젠 어떤 사업자도 이를 버릴 수 없게 됐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업가를 키워내겠다며 지원책을 언급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미국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나라’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실리콘밸리에 대한 지원책을 언급하지 않는다. 1인 창조기업, 소프트웨어기업 지원책, 제2의 빌 게이츠 만들자는 얘기 없다. 오로지 인프라로서의 교육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정부의 개방성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이런 정책들은 3년 안에, 즉 자신의 임기 안에 거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업계 진흥 정책에 회의적이다. “1인 기업 지원정책 같은 것이 없는 것보다 낫지만, 근본적인 답이 되지 못한다. 정부에서 내놓는 대부분의 지원책은 6개월~1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문서로 보고될 수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진흥책보다 새로운 서비스 출현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있다는 동기만 유발되면 가리지 않고 나타나게 되어 있다. 중간에 이를 좌절시키고 막는 관행이 문제다.” -2009년 8월 아이폰이 국내 위치정보법 규제에 묶여서 도입 중단 고비를 맞았을 때, 인기협은 아이폰 출시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 “세계는 아이폰으로 모바일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당시 국내 모바일 콘텐츠업계는 거꾸로 3년 연속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세계 유일한 사례였으며, 그야말로 질식상태였다. 정부의 규제로 아이폰 도입이 막히지만 않았어도 1년~1년반 앞서 국내에 출시됐을 것이다.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도 애플로 인해 먼저 위기를 겪었겠지만, 그만큼 대응도 앞섰을 것이다. 다행히 국내에 뒤늦게나마 모바일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국내에도 게임, 소셜네트워크, 모바일을 중심으로 창업자들이 다수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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