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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애플 투자자, 토끼간 보여달라는 용왕님 심보?

등록 2011-01-24 20:22수정 2011-02-22 11:20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프라이버시의 종말]
스티브 잡스 질병 공개요구…“CEO 건강도 투자정보” 논란
“이사회 동의 아래 병가를 얻어 내 건강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나와 내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받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사진)가 지난 17일 병가를 떠나면서 띄운 전자우편 내용의 일부다. 하지만 잡스의 간청이 무색하리만큼 지난 1주일 동안 그의 건강 상태에 관한 기사는 봇물을 이뤘다. 애플의 대변인이 나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말했다”며 세부적인 사항을 더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까지 마구 기사화되며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쟁을 한차례 불러일으켰다. 기업 경영자의 건강 상태는 프라이버시인가, 아닌가?

잡스의 병가는 이번이 세번째다.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1개월 병가 중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엔 6개월간 병가를 떠나 있다가 업무에 복귀한 뒤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엔 과거 두차례 병가와는 달리 복귀 시점이 명기되지 않았다는 점, 또 암 수술과 간 이식 수술 이후의 추가 발병이란 점 등이 이채롭다. 그가 다시 병가를 떠난 것을 계기로 무차별하게 쏟아지는 보도 가운데는, 췌장암과 간 이식 수술의 예후를 비롯해 잡스가 2009년 스위스의 바젤대학 병원에서 비공개로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는 증언과 시술 방법들에 관한 추정까지 포함돼 있다.

잡스의 건강 상태가 프라이버시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미 2008년부터 나왔다. 2008년 6월 아이폰3지(G) 발표 행사에 잡스가 살이 빠진 상태로 나타났던 점을 들어,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은 잡스의 건강 상태 공개가 충분하지 않다며 애플을 비난한 바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는 기업 재무정보 공개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경영자가 업무 수행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질병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건강 정보 공개를 요청하지는 않고 있다. 이번에 잡스가 보낸 전자우편은 이런 규정을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잡스의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한 애플의 투자정보”라며 잡스의 프라이버시 보호 요청과 법규를 넘어서 ‘추가 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신체적 특성이나 건강 정보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공개될 수 없는, 개인정보 가운데서도 보호 수준이 가장 높은 정보에 속한다. 삼성서울병원의 한 의사는 “유명인의 경우, 질병 여부를 떠나서 특정 항목 검진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개인의 의료 정보는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인의 건강 상태를 두고 “주요한 투자정보이므로 기업은 주식보유자에게 투자에 영향을 끼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이에 관한 보도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현재의 상황은 프라이버시가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후의 성역에 해당하는 프라이버시까지도 자본과 다수의 이해에 맞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건강하게만 보이던 경영자가 급작스럽게 사망할 개연성은 있고 투자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 선택이다. ‘합리적 투자’를 내세운 자본의 요구는 ‘성역’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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