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언어는 사라지고 기계끼리 저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거래하는 시대를 맞았다. 우리는 준비돼 있는가. DALL-E 3.
※ 이 글에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즈음이면 내년도 전망보고서가 쏟아진다. 보고서는 어지럽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뒤섞이며 거대한 물음표만 뱉어내고 마무리된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래 예측의 무용함을 알지만 숙제처럼 보고서를 훑고 지나가는 게 요맘때 일과다.
가트너가 10월 중순 내놓은 ‘
2024 톱 전략 기술 동향’ 보고서를 펼쳐 넘기면서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마지막 장표에 이르러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눈길을 붙잡은 단어는 ‘기계 고객’(Machine Customers)이라는 말이었다.
용어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는 이미 기계 고객끼리 대화를 나누는 세계에 발 담그고 있잖은가. 응용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이용해 사이버 공간 너머의 정보와 상호작용하며 데이터를 만들고, 읽고, 갱신하고, 지우는 과정 그 어디에도 인간의 언어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기계끼리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고, 허락을 구하고, 문을 열어주고, 쓰레기를 치운다.
챗봇과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챗지피티가 내 웹사이트 데이터를 긁어가는 게 마뜩잖은가. 웹사이트 입구에 ‘챗지피티 출입금지’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봐야 소용없다. 챗지피티의 언어로 점잖게 경고하면 된다. 코드 세 줄로 구성된 문구를 담은 ‘robots.txt’ 파일을 웹서버 루트 디렉터리에 넣어두면 될 일이다.
사내에서 만들어 쓰는 각종 정보 수집용 봇들은 또 어떤가. 이들도 따지고 보면 내가 파견 보낸 사이버 용병들이다. 나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이들이 가져온 정보를 컴퓨터 앞에 앉아 편안히 받아보고 있지만, 이 봇들은 또 어딘가에서 찌르고 막는 혈전을 치르고 힘겹게 전리품을 챙겨왔을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의 로봇 용병들이 안쓰럽게도 느껴진다.
올 한 해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기계 고객의 출현은 더욱 실감난다. 챗지피티 등장 초기에 ‘자율화된 지피티’(Autonomous GPT)가 반짝 주목받았다. 이 인공지능은 정해진 목표를 스스로 수행했다. 사람이 지정해 준 목표와 행동방식에 따라 웹브라우저를 열고 닫고, 특정 웹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해 정보를 가져오고,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거나, 내 금융 웹사이트에 접속해 기록을 확인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방아쇠, 즉 실행 버튼을 누르는 건 인간의 몫이었다.
인공지능이 ‘생성’을 넘어 ‘행동’까지 스스로 수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트너의 경고는 맵다. “2028년까지 기계 고객으로 인해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디지털 상점의 20%가 쓸모없어질 것”이란다. 그러니 미리 대비하라고 조언한다. 서둘러 기계 고객 조사팀을 꾸리고, 현재 고객이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상황이나 시장 기회를 탐색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기계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소스와 에이피아이 플랫폼 설계를 시작하라고.
기계끼리 대화가 늘어나는 세상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아날로그 방식의 사람간 대화는 갈수록 기계에 밀려나 변두리에 처박힐까, 아니면 기계와의 대화를 사람들간의 대화에 적극 끌어들인 하이브리드형 모델이 출현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희욱 미디어랩부장
asada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