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원인 및 향후 대책 브리핑에서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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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연한 초과 기간이 7년을 넘었거나 시장에선 이미 단종돼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받는 것은 물론 수리 부품조차 구하기 힘든 장비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등 공공기관 행정망의 ‘장비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가 이미 수년 전부터 이를 인식해 2019년부터 관련 예산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사업 추진의 시급성’ 등을 판단해 예산 배정 대상에서 탈락시켜온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관련 정부기관·업계를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지난 10월 기준 행정망 서버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본원의 인프라를 구성하는 장비 4200여개 중 25%가량이 내용연한(유효 사용기간)을 초과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50여개는 내용연한 초과기간이 1년 안팎이고, 200여개는 3년을 초과했다. 7년을 넘은 장비도 15개에 이른다.
이번 행정망 먹통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된 라우터(L3) 장비의 경우, 행안부는 25일 “노후화된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지난해 국가정보통신망 라우터 내용연한을 개정해 해당 장비의 내용연한을 기존 8년에서 9년으로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산(시스코)인 이 장비 도입일은 2015년 11월30일로, 시장에선 2019년 5월에 이미 단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는 행정망 장비 노후화 문제의 심각성을 수년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2018년 7월 행안부 지역정보지원과(현재 지역디지털협력과)가 작성한 ‘지방행정공통시스템 재구축 마스터플랜 수립(시도·새올행정정보시스템 및 공통기반 시스템 분야)’ 전자정부지원사업 제안요청서를 보면, 행안부는 해당 사업 목적을 ‘단종 및 기술 지원 중단 등 노후화된 기술의 개선과 성능의 보장으로 대국민 서비스 이용 편리성 향상’이라고 명시했다. 서비스(운영) 안정성 확보 및 장애 발생 시 대응시간 최소화 등도 들었다.
행안부는 노후 시스템 개선을 포함한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구축 사업’을 2019년부터 추진해왔다. 이 사업은 전국 17개 광역시·도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시도행정시스템’과 228개 시·군·구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쓰는 ‘새올행정시스템’을 통합해 새롭게 개편하는 것 등을 담고 있다. 디지털 행정서비스의 근간을 이루는 두 시스템은 각각 2004년과 2006년 개통된 뒤로 지금까지 리뉴얼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기재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검토 단계에서 5차례나 탈락했고, 지난해에야 조사 대상에 들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진행된 예비타당성 1차 심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 기준치인 1점을 넘지 못해(0.87) 또다시 탈락(1차 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휘강 고려대 교수(정보보호대학원)는 “정부의 예산 삭감 1순위가 정보통신(IT)과 보안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유지보수 요율의 현실화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민간기업이 기술·장비 구입과 교체에 대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그에 맞춰 이행하는 것처럼 정부도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해 따라야 하는데, 이번 행정망 먹통 사태를 보면 계획 수립과 이행이 제대로 됐는지 의문”이라며 “결국 10년 넘게 방치된 노후화 장비의 ‘관절’이 다 닳아 무너지게 된 셈”이라고 짚었다.
박지영 임지선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