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3일 헬렌 뵈크 덴마크 라이프사이언스 클러스터 프로젝트 매니저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치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에겐 시간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도 시장성을 검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미국 같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가적인 차원의 산업 경쟁력은 약화된다.”
지난 2월3일 덴마크 코펜하겐 리파르켄룬데후스 지역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민관협력 기구
‘덴마크 생명과학 클러스터’(Danish Lifescience Cluster)의 헬렌 뵈크 프로젝트 매니저는 “덴마크 헬스케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공공 의료·보건 데이터를 대학 연구진들과 민간 기업들에 개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디지털로 제공하면서 수집한 시민들의 건강 데이터를 활용해 기업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뵈크 매니저는 “고령화로 점점 늘어나는 보건·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에 데이터 개방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코호트(동일집단)을 미리 발견해 예방 의료 비중을 늘려, 실제 발병률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뵈크 매니저는 “예를 들어, 덴마크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신생아들의 혈액 샘플 데이터를 수집해 관리하고 있는데, 이를 분석해 특정 집단 아이들에게 적절한 영양을 공급해 영아 질병 발생률을 조기에 낮춰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일찍이 1968년 모든 시민에게 신원을 증명하는 고유 번호를 부여하는 주민등록제도를 시행한 데 이어, 1970∼80년대부터 시민들의 디엔에이(DNA)·혈액·소변·혈장 등 생물학적 샘플 데이터와 사회·경제적 데이터를 수집·관리해 왔다. 뵈크 매니저는 “축적 기간이 긴 만큼 데이터의 질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이 병원이나 대학 내 연구 조직들과 합작법인을 꾸려 통계청과
국립바이오은행 등에 공공 의료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요청하면,
연구윤리위원회가 적합성을 평가해 데이터 활용을 허가한다.
뵈크 매니저는 “민간 기업이 내 데이터에 어디까지 접근해도 되는지는 여전히 논쟁 대상이지만, 덴마크 시민들은 적어도 정부만큼은 내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좋은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다. 이에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기부하려는 의사도 높다”고 설명했다. 이는 소득의 최대 60%를 세금으로 낼만큼 강력한 복지 시스템 덕이기도 하지만, 정보 수집과 이용의 투명성이 높은 덕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덴마크 헬스케어 서비스 공식 포털 누리집에 접속해 제3자가 자신의 의료 기록을 들여다보거나 활용한 내역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뵈크 매니저는 “헬스케어 데이터의 의미가 앞으로는 전통적 의미의 의료·보건 데이터에서 더욱 다양한 행동 데이터로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언제, 어떤 물건을 사는지와 같은 정보는 비만 발병률을 미리 예측해 대응하는 데에 중요한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펜하겐/글·사진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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