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헤리티지 3D 프로젝트가 360도 카메라를 활용해서 미얀마에 있는 바간 사원을 촬영하고 있다. 오픈 헤리티지 제공
튀르키예 지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가지안테프 성이 무너졌다. 가지안테프 성은 동로마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성으로, 튀르키예 독립전쟁 당시 격전을 벌인 곳이다. 자연재해와 관리 소홀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2018년 9월 리우데자네이루 국립 박물관에 갑작스러운 화재로 2천만개 넘는 문화유산이 불에 탔다.
국내에서 2008년 발생한 숭례문 방화사건은 15년전 일이지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자리를 지키던 숭례문이 불타오르며 와르르 무너지는 과정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온국민은 안타까워하면서 지켜볼 뿐이었다. 다행히 화재 전에 숭례문 전체를 3차원(3D) 레이저로 스캔해 둔 덕분에 빠르게 복원할 수 있었다.
3D 레이저 스캔 기술은 당시 첨단 기술이었지만 지난 15년 동안 훨씬 다양한 기술이 생겨났다. 드론과 3D 레이저 스캐너, 자율주행 차량에 사용되는 SLAM(동시 위치 추정 및 지도 작성) 기술로 수집된 공간 정보 데이터는 가상현실(VR) 플랫폼에 그대로 얹힌다. 도시 전체를 그대로 디지털 세상으로 복제할 수 있다.
문화유산을 디지털 세계로 가져오는 ‘디지털 헤리티지’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문화유산은 기록·보전을 넘어서 가상에서 향유하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변신한다. 디지털로 전환된 이미지, 3D 데이터, 동영상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사이아크(CyArk)는 지난 15년 동안 구글과 협업해 오지에 있거나 지진,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에 노출돼 있는 지역의 세계문화유산을 3D 레이저로 스캔한 뒤 동영상과 이미지를 더해서 웹콘텐츠로 제작하는 ‘오픈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픈 헤리티지 웹사이트를 통해 나이지리아, 태국, 필리핀 오지에 있는 문화유산을 방문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 요루바 지역에 있는 ‘성스러운 숲’은 요루바 사람들이 섬기는 여러 신들의 신전·제단·조각상이 있는 신비한 숲이다. 100년 전에는 요루바 지역 거의 모든 마을에 ‘성스러운 숲’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한 곳만 남아 있다.
사이아크는 ‘오픈 헤리티지 3D’ 웹사이트를 통해서 전세계 문화유산 3D 데이터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폼페이 유적지, 링컨 기념관, 아폴로 신전 등 80개 이상의 문화유산 3D 데이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공개된 3D 데이터는 게임과 영화, 전시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다. 디지털 대전환시대를 맞이하여 문화유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술은 문화유산을 가장 안전한 디지털 세상에 보존한다. 과거에는 훼손될까봐 조심스럽게 눈으로만 봐야했지만 가상세계에 구현된 문화유산은 만지면서 오감으로 감상할 수 있다. 과거의 찬란한 기억으로 머물렀던 문화재가 기술을 만나 새롭고 친근한 방식의 향유 대상으로 새 생명을 맞을 수 있게 됐다.
강현숙 사단법인 코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