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가 끝났다.”
아이티(IT·정보기술) 기업들이 밀집한 판교테크노밸리(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요즘 들어 자주 들리는 말이다.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언택트(비대면) 특수를 타고 판교의 테크 기업들은 줄줄이 ‘역대급’ 실적을 올렸다. 주식시장에서도 네이버·카카오 등 선두 기업들은 저금리 시기의 ‘국민 투자처’로 떠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올해 초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언택트 기조와 저금리 등의 호재가 사라지며 아이티 업계의 실적과 주가가 곤두박질 친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면서, 2000년대 초반 ‘버블’ 붕괴를 떠올리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해 성장통을 극복할지, ‘닷컴 버블’ 붕괴에 비견될 업황 부진을 겪을지 빅테크의 미래에 관심이 모인다.
아이티 업계의 달라진 분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급성장한 서비스들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12일 <한겨레>가 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지난달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ZEPETO) 애플리케이션(앱)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1만6000여명(이하 안드로이드 이용자 기준·애플 iOS 제외)이었다. 지난 1월(29만1000여명)보다 26% 감소한 것이다. 월간활성이용자수는 한 달에 한번 이상 앱을 켜본 실제 사용자 수로, 충성고객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제페토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는 매달 24만∼29만명의 활성이용자를 모았지만 올 들어 상승세가 꺾였다. 게임 기반의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 역시 1월 133만4000여명에서 지난달 122만2000명으로 4개월 새 9% 줄었다.
배달 플랫폼도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배달의민족·배달요기요·쿠팡이츠 등 배달앱 3사의 총 월활성이용자는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20년 1월 1432만7000명에서 지난해 12월 2527만3000명으로 2년 동안 76% 뛰었다. 이 숫자에 집계된 안드로이드 이용자 외에 애플 아이오에스(iOS) 사용자까지 고려하면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들 앱을 쓴 셈이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이용자가 매달 줄어들면서 지난달 2200만여명으로 떨어졌다.
카카오톡과 같은 ‘스테디셀러’ 이용자도 감소세다. 지난달 카톡 활성이용자는 3205만6000명으로 2020년 1월(3773만2000명) 대비 85% 정도였다. 한 플랫폼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카톡을 따라잡을 경쟁자가 없지만, 메시지 전송 이외의 뚜렷한 사용 계기를 만들지 못하며 이용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며 “앱에 붙는 광고 단가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 감소는 실적 둔화로 이어졌다. ‘네카오’(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한 국내 주요 플랫폼 기업들의 올 1분기(1∼3월) 실적은 전 분기 대비 대체로 줄어들며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이 기간 네이버와 카카오의 매출은 각각 4%, 8% 감소했다. 쿠팡은 1분기에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흑자 전환에는 실패했다. 6월9일(종가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 네카오 주가는 지난해 12월30일 대비 28%씩 빠진 상태다.
이른바 ‘팡’(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8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보면, 뉴욕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정보기술 지수는 올 들어 지난 7일까지 19% 떨어졌다. 같은 기간 에스앤피500 전체는 13% 하락에 그쳐, 두 지수의 격차가 2004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컸다. 전반적인 경기 부진 속에서 아이티 기업들의 실적이 더욱 빠르게 쪼그라든 결과다.
금리 인상도 테크 기업 실적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0.25%에서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0.5%포인트를 한번에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지난해 8월부터 꾸준히 인상 기조를 취하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는 1.75%로 감염병 유행 직전보다 높다.
금리인상은 기술 개발 등에 많은 지출을 하는 테크 기업의 부담을 키운다. 신기술이 새로운 사업모델로 이어지기까지는 차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오르면 추가 투자를 줄이거나 도산하는 회사들이 생긴다. 초저금리 기간 과도하게 부채를 불린 곳들은 벌써부터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등 다른 거시경제 요인들도 플랫폼 업체들을 옥죈다. 온라인 광고 시장이 위축되면서다.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 운영사인 스냅의 에반 스피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3일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금리 인상과 초고율 인플레이션, 공급망 차질,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겹치며 기업들의 디지털 광고 지출이 심각하게 감소했다. 거시경제 환경이 예상했던 것보다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 제이엠피(JMP)증권 역시 “거시경제 역풍이 모든 디지털 광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기업들이 광고 예산을 줄이는 과정에서도 특히 디지털 브랜드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신기술에 기반한 미래 먹거리는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수년 새 국내외 테크 기업들이 주로 택한 신사업은 메타버스·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이지만, 여기서 수익을 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많다. 페이스북의 경우 지난해 10월 사명까지 ‘메타’로 바꾸며 메타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가상현실 담당 자회사인 ‘리얼리티 랩스’는 지난해 4분기 33억달러(4조1000억원), 올 1분기 30억달러(3조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그룹의 실적 추락을 부추겼다. 국내에서는 최근 카카오가 카톡 오픈채팅과 프로필 등을 활용한 메타버스 개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구체적인 수익화 전략은 드러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닷컴 버블’ 식의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닷컴 버블은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기업 주가가 급등했다가 2000년대 초반 폭락한 사건이다. 당시에도 저금리와 인터넷 신기술 기대감 등이 겹치며 거품이 형성됐다. 하지만 금리가 재차 오른데다, 열악한 통신환경과 기술 부족 등으로 기업들이 기대만큼의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자 투자금도 빠르게 회수됐다.
전문가들은 향후 공룡 아이티 기업들의 성패는 기술력과 사업화 능력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빅테크’라는 이름에 걸맞는 기술을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필요할 서비스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2년 테크 기업의 급성장은 코로나19 유행과 저금리 등 외부적 특수에 기댄 바가 컸다”며 “외부 환경이 이전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용자들이 찾을 만한 기능과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간 축적한 기술을 접목해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업은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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