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스타트업 투자 펀드 ‘비전펀드’가 지난해(회계연도 기준) 34조8천억원의 유례 없는 손실을 냈다. 비전펀드를 운영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스타트업 신규 투자를 지난해의 절반 또는 4분의1 수준으로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나고 금리가 오르며 아이티(IT) 업황의 ‘카나리아’로 불리는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벤처캐피털(VC)들의 투자가 올해 들어 급감하며 스타트업들의 돈줄이 끊긴 건 물론, 완숙 단계 기업들의 기업공개(IPO)까지 어그러지며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도 요원해졌다.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조1452억원이던 국내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올해 5월 7577억원으로 33%가량 줄었다. 이 기관은 “전년 동기 대비 투자 건수는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투자 규모가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올해를 목표로 기업공개를 추진하던 기업 상당수가 계획을 미루거나 중단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원스토어와 에스케이(SK)쉴더스, 태림페이퍼 등 세 곳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가 철회했다. 업계에선 이들 기업이 투자 수요 감소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한 초기 스타트업 전문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최근 포트폴리오사들을 만나면, 당분간 채용을 보수적으로 하고 기술 검증 속도에 박차를 가하면서 현금을 최대한 들고 있으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분위기도 밝지 않다. 시장조사 기업 시비(CB)인사이츠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전세계 벤처투자 금액이 1분기 대비 19% 줄어든 577억달러에 그칠 거라고 전망했다. 전세계 벤처 투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미국 내 투자도 2분기 말 기준 610억달러에 그쳐, 1분기에 비해 13%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유니콘 기업’ 등장도 주춤하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 1분기 전세계에서 탄생한 유니콘 기업 수는 113개였지만, 2분기에는 62개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시비인사이츠는 “분기별 신규 유니콘 기업 수가 100개 미만인 것은 2020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돈이 돌지 않자 기업들은 인력 감축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특히 국내보다 해고가 쉬운 해외에서 스타트업 해고 대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4월 가상자산 관련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며 주목받은 코인베이스는 신규 채용을 당분간 멈추겠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등장해 단숨에 기업가치 40억달러를 인정받은 음성 소셜미디어(SNS) 클럽하우스도 앱 신규 설치 수와 하루 평균 이용자수가 급감하며 뉴스, 스포츠, 국제 협력 등 부문 인력을 감축했다.
초기 스타트업 전문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해외보다 규모가 작고 모태펀드 비중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 유동성 위기의 여파가 해외보다 크지는 않겠지만, 대기업과 해외 자본이 철수할 경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