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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쿠팡 닭가슴살 사려다 ‘멤버십 연장’ 할 뻔…눈속임도 ‘와우’

등록 2022-05-02 04:59수정 2022-05-03 08:57

‘멤버십 요금 인상’ 동의 메시지
상품 결제창 맨 끝에 위치한데다
‘멤버십 유지’에 기본값 설정돼
고객들 무심결에 연장 동의 우려
미·EU, ‘고객 피해’ 다크패턴 제재
한국은 규제 장치 마련에 ‘미적’
‘다크패턴’으로 지적되는 쿠팡 앱 화면. ‘구매조건 동의’ 문구에 연이어 멤버십 연장을 물어본다. 주문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동의 버튼을 누르기 쉽다. 독자 제공
‘다크패턴’으로 지적되는 쿠팡 앱 화면. ‘구매조건 동의’ 문구에 연이어 멤버십 연장을 물어본다. 주문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동의 버튼을 누르기 쉽다. 독자 제공
이재열(가명·33)씨는 최근 쿠팡에서 닭가슴살을 주문하다가 예정에 없던 지출을 할 뻔했다. 지금보다 비싼 회비로 멤버십을 연장할지 묻는 칸이 결제창 맨 아래에 숨어 있었다. 쿠팡은 다음달부터 회비를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올리는데, 이씨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멤버십을 해지할 계획이었다. 이씨는 “결제 조건을 안내하는 건 줄 알고 자칫 동의할 뻔했다”고 말했다.

‘다크패턴’(눈속임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뜨겁다. 다크패턴은 원래대로라면 소비자가 사지 않았을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일컫는 용어다. 국내에서는 ‘적자 탈출’이 급한 쿠팡이 다크패턴을 적극 이용하면서 소비자 피해가 늘고 있다. 유튜브가 유료 가입을 권하고, 카카오가 인터넷 접속 첫 화면을 다음으로 바꾸게 하는 마케팅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규제 방안은 전무하다.

■ 쿠팡의 ‘다크패턴’ 백태 1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쿠팡의 다크패턴은 유료 회원제인 ‘와우 멤버십’ 연장에 집중돼 있다. 쿠팡은 다음달부터 이 멤버십 월 회비를 4990원으로 인상한다. 이에 최근 앱과 누리집 첫 화면에 팝업창을 띄워 ‘회비가 올라도 멤버십을 유지한다’는 동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회원이 팝업창에서 동의를 보류해도 쇼핑 중 자신도 모르게 멤버십을 연장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주문·결제 등 멤버십과 무관한 화면에서도 동의를 받고 있어서다. 이 선택 난은 “주문을 확인하고 결제에 동의한다”는 문구 바로 아래에 배치된다. 유심히 읽지 않으면 상품 결제 조건에 대한 승낙으로 오해하고 클릭할 만한 화면 기획이다. 쿠팡이 선택지의 기본값(디폴트)을 거부가 아닌 ‘동의’로 해둬, 본의 아니게 연장할 가능성은 더욱 높다.

다크패턴 지적을 받고 있는 쿠팡 앱 화면. 멤버십 무료체험을 해지하면 혜택이 “즉시 사라진다”고 안내한다. 막상 해지 버튼을 눌러도 “혜택은 유지”된다. 쿠팡 앱 갈무리
다크패턴 지적을 받고 있는 쿠팡 앱 화면. 멤버십 무료체험을 해지하면 혜택이 “즉시 사라진다”고 안내한다. 막상 해지 버튼을 눌러도 “혜택은 유지”된다. 쿠팡 앱 갈무리
쿠팡의 다크패턴은 이뿐이 아니다. 쿠팡 신규 회원이 멤버십 무료 체험을 해지하는 경우에는 ‘해지 시 불이익’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가 노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은 가입 뒤 30일간 와우 멤버십을 무료 제공하는데, 중도 해지하려는 회원에겐 만류하는 문구들을 띄운다. “해지하면 회원전용 혜택이 즉시 사라진다”, “더 이상 회원가에 구매할 수 없다” 등 불이익이 곧바로 발생한다고 읽힐 법한 내용이다. 그러나 해지 버튼을 눌러도 30일 중 남은 기간에는 혜택이 유지된다.

업계에서는 쿠팡의 다크패턴 마케팅이 한동안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본다. 쿠팡은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시장을 독점한 뒤 가격을 올린 아마존의 전략을 벤치마킹해왔다. 쿠팡이 기꺼이 대규모 적자를 감수해온 이유다. 이제 남은 과제는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을 최대한 누그러뜨리는 것인 셈이다. 한 핀테크 회사 웹기획자는 “최근 주가 부진 등으로 ‘적자 탈출’이 급해진 쿠팡이 위법을 감수하고 무리수를 둔다는 평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팡 쪽은 “월 회비 변경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고객이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고객의 결정에 대해서는 이메일(전자우편)을 보내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객은 언제든 그들의 결정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 세계는 규제 마련 ‘잰걸음’,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다크패턴은 뜨거운 감자다. 온라인에서는 복잡한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제공돼 인터페이스가 조금만 바뀌어도 소비자 선택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 구매 행태에 대한 빅데이터를 쌓은 기업들이 더 정교한 다크패턴을 설계할 수도 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9년 조사한 웹사이트·앱 1760곳 중 24%가 다크패턴에 해당할 소지가 있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최근 다크패턴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도입하는 데 최종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선택지를 더 두드러지게 표시하는 행태 등이 금지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다크패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내 규제당국이 미적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쿠팡에서 최근 나타난 다크패턴은 현행법으로 제재가 어렵다. 엄밀한 의미에서 소비자를 속인 것은 아니어서다. 입법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무료 체험 뒤 유료로 전환되는 구독 상품에 대한 소비자 동의 절차를 강화하도록 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 정도가 전부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명백한 소비자 기만과 통상적인 마케팅 사이에 다크패턴이라는 ‘회색 지대’가 있다”며 “어디까지를 위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천호성 이재연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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