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다시 운동장비를 마련하던 40대 직장인 ㅇ씨는 최근 낭패를 볼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20만원 중반대의 최고급 축구화가 네이버쇼핑에서 불과 17만원에 판매되자 결제를 서둘렀던 것. 하지만 최종 단계에서 가격이 26만원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결제 직전 해외배송비 9만여원이 추가돼서다. ㅇ씨는 깜짝 놀라 구매를 포기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당일배송 서비스를 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새벽배송 마감 시각을 초단위로 알려준다거나, ‘오늘 판매되는 마지막 제품’, ‘상품을 110명이 함께 보고 있다’ 따위의 정보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식이다.
자칫 물건을 놓칠 수 있다는 ‘상실공포’(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를 이용해 구매결정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이나 모바일 업체 쪽이 소비나 이용횟수를 늘리는 데 쓰는 속임수나 가짜 정보를 ‘다크패턴’이라 부른다. 불법의 경계선을 교묘히 넘지 않으면서 소비자를 속이는 방식이다. 영국의 사용자체험(UX) 디자이너 해리 브링널이 지난 2011년 온라인에서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12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이름을 붙이면서 알려졌다.
다크패턴의 방식은 다양하다. 정기 구독상품 해지 버튼을 찾기 어려운 곳에 숨기거나,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이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뒷광고’도 모두 다크패턴의 하나다. 무료서비스 같은 미끼를 던져 개인정보공개 허용을 유도하거나(미끼와 스위치), ‘다른 데서 비싸게 구매하기’ 같은 문구를 넣어 소비를 유도하는 경우(선택 강요)도 있다. 이요훈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다크패턴을 알아채기조차 어렵다”며 “불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세계적 기업들마저 노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크패턴은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한 온라인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기업이 다크패턴 같은 ‘꼼수’를 부린 사실을 소비자들이 알게 되는 순간 이탈하기 시작할 뿐더러 브랜드에 회복하기 어려운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일종의 소비자 기만행위인 만큼, 다크패턴 관련 피해를 막을 대책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해리 브링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다크패턴즈’(darkpatterns.org)에 다크패턴을 신고받는 ‘수치의 전당’에는 올해에만 110여 건의 신고글이 올라왔다.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이어진다. 영국 경쟁시장청은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데이터과학자 등을 동원해 소비자 불만 조사에 나섰고, 호주·캐나다 등도 온라인 상품의 가격이나 희소성 정보를 정확히 표시하도록 지침을 내놨다. 이뿐 아니다. 국제소비자보호집행기구(ICPEN는 22개 회원국과 함께 사이트 1760곳을 점검해 492곳에서 다크패턴 문제를 확인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내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다크패턴 확산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을 목적으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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