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커뮤니티와 활동가들, 오길비 페루, 혼다가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낸 ‘수직 오토바이’
남아메리카 페루의 안데스 습지는 이테야자나무 군락지다. 늘씬한 키에 부채살처럼 퍼진 잎이 뿜어내는 자태도 우아하지만, 진짜 가치는 열매에 있다. 아구아헤. 비타민 에이(A)와 시(C)가 풍부한 열대과일이 이 나무에서 맺힌다. 적갈색 껍질 속 샛노란 과육은 그 맛이 은은하면서도 새콤달콤하다. 피부 보습과 진정, 갱년기 증상 개선 등의 효과를 지녔다.
페루의 커뮤니티와 활동가들, 오길비 페루, 혼다가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낸 ‘수직 오토바이’
문제는 채취 방식이다. 아구아헤는 35m 높이의 야자나무 꼭대기에서 자란다. 지역 주민들은 아구아헤를 따기 위해 지금까지 나무를 통째로 베었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지금까지 100만 헥타르의 아마존 숲이 황무지로 변했다. 축구경기장 80만 개에 버금가는 면적이다. 불도저로 야자나무를 밀어내는 불법 벌목업자들은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까지 밀어냈다.
산림을 보호하면서 아구아헤도 손쉽게 수확할 수 있는 묘안이 없을까. 페루 파리나리 지역 커뮤니티와 활동가들, 광고기획사 오길비 페루와 제조사 혼다가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물이 ‘
수직오토바이(The Vertical Bike)’다.
페루의 커뮤니티와 활동가들, 오길비 페루, 혼다가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낸 ‘수직 오토바이’
수직오토바이는 나무 꼭대기에 달린 아구아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생김새부터 일반 오토바이와 사뭇 다르다. 혼다의 1.8마력 엔진과 나무를 손쉽게 탈 수 있도록 제작된 바퀴 2개, 이를 연결해주는 프레임과 체인으로 구성됐다. 두 바퀴 사이 공간이 나무를 감싸도록 설치하고 시동을 걸면 오토바이는 거짓말처럼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35m 높이 나무 꼭대기에 도달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최대 90kg까지 무게를 지탱하며, 열매를 따는 과정에서 나무에 주는 손상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성인 남성이 등에 짊어져도 무리가 없는 무게로, 울창한 숲을 헤치고 운반하는 것도 문제 없다.
수직오토바이 덕분에 원주민들은 나무를 베지 않고도 해마다 아구아헤를 손쉽게 딸 수 있게 됐다. 수확량도 늘어나고 안데스 숲 생태계도 보존하니 금상첨화다.
2019년에도 가나파티 밧이라는 인도 농부가 야자나무를 수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오토바이를 개발한 적 있다. 이 농부는 7개월 동안 우리돈 1400만원을 들여 좋은 부품으로 오토바이를 직접 만들었다. 사람들이 오토바이의 안전성을 의심할까 봐 인근 나무에서 150차례 넘게 ‘시운전’도 했다.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 감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냉소와 조롱도 적잖이 쏟아졌다. ‘에어백은 달려 있냐’라거나 ‘사다리 쓰면 되지, 뭘 복잡하게 그런 걸 쓰냐’는 식이었다. 밧은 우리돈 128만원에 지역 농민들에게 이 오토바이를 보급하겠다고 말했다.
인도 농부가 만든 오토바이가 그 뒤 어떻게 됐는지는 듣지 못했다. 페루산 수직오토바이의 이야기는 어디로 이어질까. 둘은 닮았다. 대단한 기술도, 복잡한 설계도 들어가지 않았다. 쓰임새보다 만듦새에 더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 ‘쓸고퀄’ 제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이들은 문제 해결 방법을 새롭게 정의했다. 손쉽지만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 대신, 자연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해법을 도모했다. “행동은 모든 성공의 기본 열쇠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이희욱 미디어전략팀장
asada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