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업 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멤버들. 앞줄 왼쪽부터 액센추어 노스아메리카의 줄리 스위트,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애플의 팀 쿡,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의 로버트 스미스, 뒷줄 왼쪽부터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제너럴모터스의 메리 배라, 블랙록의 래리 핑크. <뉴욕 타임스> 누리집
영어로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는 12세기 프랑스어 ‘콩파니’(Compagnie)에서 나왔다. 사회·우정·친밀함·군대 등을 뜻하는 말이다. 어원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 ‘콤파니오’(Companio)에 닿는다.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식구’다. ‘기업가’(Entrepreneur) 역시 ‘사회와 더불어 주고받는 사람’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무역이나 상업을 뜻하는 ‘상거래’(commerce)도 ‘사회적 유대’와 동의어였다
이는 기업, 기업가, 상업 모두 그 출발은 공동체적인 존재와 활동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의미는 지금 보면 외계어를 대하는 듯 낯설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경영대학원(MBA) 강의실에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가르쳤다. ‘주주자본주의’라 이르는 이런 주장은 어설퍼 보여도 든든한 후원자들을 갖고 있다. 1970년대 과감히 이런 주장을 들고나온 시카고 경제학파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 그리고 현장에서 이런 원리를 가차 없이 적용해 경영자의 우상이 된 된 잭 웰치 전 지이(GE) 회장 등이 그들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한 프리드먼은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기업에 “사회적 책무”란 없으며, 오직 있다면 주주에 대한 책무만 있다고 주장했다. 1970년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썼다.
물론 프리드먼이 그리 단순하게만 말한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정부가 할 일을 고민하는 대신 이윤 창출에 집중하면 일단 망해서 사회에 폐 끼칠 일이 없고, 고용과 납세로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게 된다는 뜻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주를 숭상하는 과감한 주장이 경제·사회적 행동양식을 바꾸어 나가면서 드러나는 결과는 프리드먼의 기대와 많이 달랐다. 분기마다 이뤄지는 실적 발표, 주가와 직접 연계된 경영자 보상 시스템은 회사의 중역과 이사가 특정한 인센티브, 즉 물불 안 가리는 이윤 증대를 선택하도록 했다. 과도한 감원, 비정규직 확대, 자산 매각, 입찰 담합, 협력업체 쥐어짜기,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탈세 등이 그런 것들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면서 유해성을 감췄고, 디젤차의 배출가스 검사 결과를 조작했으며, 포장재를 남용해 바다를 플라스틱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기업이 이익만을 위해 많은 것을 외면한 결과는 △주기적인 경제·금융 위기 △심화하는 불평등 △턱밑을 파고드는 기후위기였다. 기업의 수익 가운데 노동자 몫은 줄고 경영자 몫은 커졌다.
이런 주주자본주의는 이제 ‘석양’을 맞고 있다. 그 징표 중 하나가 유수한 경영자들이 오래된 ‘도그마’를 폐기하고 기업의 사명을 재정의한 것이다. 주요 미국 대기업을 대표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이하 비아르티)은 지난 8월 말 ‘포용적 번영’을 강조하는 ‘기업의 사명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서 경영자들은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번영을 극대화하는 게 사명이라고 재정의했다. 즉 고객에게 가치 있는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노동자에게 정당한 몫을 보상하고 교육에 투자하며, 납품·협력업체는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우하며, 지역사회 구성원을 존중하고, 사업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한 행위를 함으로써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게 성명의 내용이었다. 성명서에는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 181명이 서명했는데, 제이피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지엠(GM)의 메리 배라, 보잉의 데니스 뮬런버그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환영한 것은 물론 아니다. 기관투자가협의회는 “모두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사회적 목적을 규정하고 대응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 경고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는 “그들이 진지하다면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인상하고, 부자가 제대로 된 세금을 내자고 말해야 한다”며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1970년대 이후 금융은 세계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이익을 찾아나섰다. 미국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인수는 ‘헐값 매각’ ‘국부 유출’ 등 다양한 논란을 낳았다. 2012년 5월 참여연대 회원들이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부당이득 환수 추진을 위한 주주 모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그런데도 비아르티의 기업 사명 재정의는 어떤 것이 성공하는 기업인가에 관한 생각이 적잖게 변했음을 보여준다. 불평등과 기후변화라는 양대 위기 앞에서 기업이 경제적 책무와 사회적 책무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은 많은 공감을 받아왔다. 하버드대 기업사학자 낸시 케인은 “경영자들은 시대정신에 반응하는 것”이라며 “예전 그대로의 비즈니스가 더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압박과 법적 규제 움직임도 생각 변화의 촉진제가 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반세계화 정서가 번지고, 분노의 지향점이 어딘지 모를 포퓰리즘과 극적인 변화를 바라는 정서가 번지고 있다. 9월7일치 <파이낸셜 타임스>를 보면, 2017년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의 44%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밝혀 놀라움을 주었다. 이런 정서를 등에 업고 기업과 금융을 규제하려는 대표적 움직임이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지난해 8월 발의한 ‘책임 있는 자본주의 법’이다. 이 법은 연간 매출이 1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이사들 가운데 40%를 노동자가 선출하고, 정치자금 기부와 같은 정치 지출 결정을 하려면 이사와 주주 4분의 3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경영진과 이사의 스톡옵션은 받은 뒤 5년 안에 매각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의 노동당은 지난해 9월 상장기업이 10년간 점진적으로 10%까지 주식을 출연해 기금을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배당금을 노동자에게 분배하거나 양극화 해소에 쓰는 ‘포괄적 소유기금’(Inclusive Ownership Fund)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비록 주주자본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라 해도 성명서 하나가 기업을 확 변화시키리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주주를 정점에 둔, 지난 50년 가까이 지속돼온 체제는 다양한 요소가 촘촘히 얽혀 돌아가는 경제·사회적 레짐(가치, 규범, 규칙의 총합)이었다. 이는 1970년대 초반, 전후 브레턴우즈체제가 무너지고 규제가 풀린 금융이 세계를 넘나들며 제조업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의 요구였다. 금융자본주의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한 신조이자 시스템이었다. 실물을 다루는 기업이 경제를 주도하고 은행 중심의 금융은 인내 자본 역할을 하던 앞 시기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새 체제도 여러 경영실험과 법적·규범적 뒷받침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책임 있는 자본주의를 강조해온 미국 변호사 마틴 립턴 등이 최근 내놓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런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지속가능한 장기투자와 성장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파트너십’이란 이름의 제안은 기업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연기금 같은 금융투자의 새로운 행동모델을 제시하려 한다. 기업과 주식 투자자들이 단기 실적주의의 유혹을 끊어내고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는 행동원칙을 정리했다.
여기에 더해 주주자본주의의 태양이 중천에 떠 있을 때부터 태동한 다양한 대안적 흐름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제시한 공유가치창출(CSV)처럼 사회문제 해결을 기업의 본업과 연계해 장기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시도, 영리성과 사회적 책무를 함께 중시하는 베니핏 코퍼레이션(비코프) 실험, 그리고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흐름도 있다. 에스케이(SK)의 ‘더블버텀’ 라인처럼 기업이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움직임도 눈여겨볼 변화다.
경영 사상가 필립 코틀러는 ‘올바른 행동’은 이제 기업의 생존과 번영의 필수조건이 됐다고 말했다. 기업이 사회적 책무와 경제적 이익의 균형을 맞춰가면서, 생태계를 따뜻하고 건강하게 가꾸는 것은 위기의 시대에 대응하는 핵심 전략이 됐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