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4월27일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하는 원탁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37개국과 국제기구 지도자 40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가 심상치 않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계속되고,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보복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중국과 홍콩 사이의 범죄인 인도 조례인 ‘송환법’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는 복면금지법 철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등 동아시아 곳곳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70년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의 패권 경쟁의 장이었다. 과거사를 지우고 다시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는 일본, 일본과 역사 갈등을 겪고 미국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폭발적인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의 일인자로 우뚝 선 중국, 그리고 두 나라에 대한 전략을 수정해가며 동아시아를 영향력 아래 두려는 미국, 북한 핵폐기 등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국. 이렇듯 오랜 시간 갈등과 긴장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동아시아 나라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평화의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23일 오후 신도 에이이치 일본 쓰쿠바대 명예교수와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인문학부)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라는 주제로 대담을 한다.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신도 교수는 미국 외교, 아시아지역 통합, 국제정치경제학 전문가로 현재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대표, ‘일대일로’ 일본연구센터 센터장도 맡고 있다.
신도 교수는 1979년 ‘미국이 일본 본토 점령을 끝낸 뒤에도 오키나와에 대한 군사점령을 계속해주기를 희망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히로히토 일왕의 메시지를 발굴한 논문 ‘분할된 영토’를 잡지 <세카이>에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논문이 ‘천황’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어, 성역 없이 연구하는 신도 교수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신도 교수는 최근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끝났고, 세계의 축이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처음 제기한 구상으로 고대 실크로드처럼 내륙과 해양에 다양한 길을 만들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신도 교수는 ‘일대일로’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군사적 동맹이 아닌 사회·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 빈곤을 해소하고 테러 가능성을 낮추며,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한국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도 교수와 대담할 왕후이 교수는 중국 ‘신좌파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로, 시진핑 정부 국정철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신좌파는 낡은 형태의 사회주의에 반대하지만, 중국 정부가 충분히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왕 교수는 서구 세계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 및 동아시아의 경험과 독자성에 주목하고 있다.
왕 교수는 동아시아의 갈등이 냉전, 탈냉전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홍콩, 대만 문제에 대해 왕 교수는 최근 발표한 글에서 “중국 대륙 쪽에서 더 공평하고, 더 융합적이며 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람들에게 창조적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발전 경로를 개발하지 못한다면 무거운 역사의 부담을 뚫고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의 변화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왕 교수는 “지난해 한반도는 평화로 전환하는 하나의 계기를 얻었다. 이는 동아시아의 전면적 평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기점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세계든, 지역이든 모두 순식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갖가지 힘을 동원해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일본, 한국, 북한, 러시아 등이 새로운 지역 협력을 시작해, 현재 미국 패권이 주도하는 질서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포럼은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지역학협동과정)가 좌장을 맡고,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이 토론자로 참석한다. 문 위원장은 평화 유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연결고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펼칠 예정이다.
△신도 에이이치
1939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교토대 법학부 졸업
쓰쿠바대 교수, 와세다대 아시아연구기구 객원교수
현 쓰쿠바대 명예교수,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대표, ‘일대일로’ 일본연구센터 센터장
미국 외교, 국제정치경제학, 아시아지역 통합 등 전문가
주요 저서: <현대미국 외교론―우드로 윌슨 국제질서> <분할된 영토, 또 하나의 전후사> <동아시아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까> <일대일로에서 유라시아 신세기의 길>
△왕후이
1959년 중국 장쑤성 양저우 출생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
중국사화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 하버드대 방문교수
현 칭화대 교수 겸 인문사회고등연구소장
주요 저서: <근대 중국 사상의 흥기> <탈정치화의 정치: 짧은 20세기의 종결과 90년대> <절망에 반항하라> <상상하는 아시아의 정치>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