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산업혁명 이후 근대 세계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의 3부작으로 정리한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노년에 현대사를 기술한 책을 추가하면서 <극단의 시대>라 이름 붙였다. 새 천년을 앞둔 시점에서 책을 마무리한 그는 “20세기는 아무도 해결책을 갖지 못한 문제를 남기는 것으로 끝났다”며 “과거나 현재를 연장함으로써 (…) 세번째 천년기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시 100년이 지나 2100년 언저리에서 홉스봄 같은 사학자가 새 밀레니얼의 첫 100년을 정리한다면 그 책 제목은 무엇일까? 첫째는 ‘파국의 시대’라 지을 가능성이다. 21세기는 불평등 같은 경제·사회 위기와 기후변화라는 생태·환경 위기를 안고 출발했으나, 인류는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으로 치달았다. 생산과 소비를 무한히 반복해야 돌아가는 ‘외발자전거 경제’는 그 앞 세기와 달라진 게 없었고,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만 갔다. 대기는 빠르게 더워졌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며 메탄가스가 치솟기 시작했고 기후변화는 손쓸 수 없이 가속됐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층, 알프스 등의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빠르게 올라가 뉴욕, 상하이, 도쿄 같은 바닷가 인구밀집 도시는 살기 어려운 곳이 됐다. 홍수와 가뭄, 식량부족, 대기오염, 창궐하는 전염병, ‘1 대 99’를 넘어 악화하는 불평등 등으로 사회계급, 계층 간 아귀다툼은 심해졌다. 기후변화로 뉴욕 한복판이 얼어붙는 영화 <투모로우>, 경제·사회·환경적 위기가 극단화한 상황을 묘사한 <설국열차>의 내용이 현실이 됐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사람들은 수만년 인류 역사를 400여년 만에 파국에 이르게 한 자신의 몽매함을 한탄한다.
두번째는 ‘합의의 시대’라는 제목이 붙는 것이다. 이 책에서 21세기는 세계가 협력해서 난제를 극복한 시대로 규정될 것이다. 많은 것이 극단으로 치닫던 앞 세기와 달리 생명을 주는 지구의 한계 안에서 생산과 분배 방식을 재설계하면서 모두의 ‘피어나는 삶’이 가능해졌다. 2015년 유엔에서 환경과 경제, 사회 분야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며 193개국이 합의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출발점이었다. 이후 여러 나라는 실정에 맞는 실천 로드맵을 만들어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해 실천해갔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2015년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 및 권위 있는 기상학자들의 모임인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경고와 제안이 가이드라인이 됐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파리협약을 탈퇴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기후의 변화는 부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2019년 가을 유엔 무대에 서서 “대규모 멸종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의 절규는 큰 울림을 줬다. 이후 청소년 결석시위와 시민사회의 비상행동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어졌고, 기후변화 대응은 여러 나라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현대사회의 주요한 주체인 기업은 맹목적 이윤추구에서 벗어나 사회와 환경,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함께 고려하는 경영을 하겠다고 2019년 여름 선언했다. 환경과 사회 위기의 요인으로 지목되던 극단의 시장주의는 점점 발붙이기 어려워졌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 거대기업이 앞장서 석탄·가스와 같은 온실가스 전기를 버리고 태양광·풍력을 100% 쓰는 에너지전환을 이뤄갔다. 무엇보다 각국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에 이르겠다는 약속을 실천한 결과, 지구 기온은 과학자들이 경고한 수준인 산업화 이후 상승폭 1.5도 직전에서 겨우 멈췄다. 모든 사람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하는 경제와 사회 체제의 밑돌이 놓이며 불평등도 차츰 완화되어갔다.
인류를 점점 압박하는 위기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고 있다. ‘일의 미래’ ‘불평등 극복’ 등 한국 사회의 의제를 한발 앞서 제시해온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이 10회째를 맞는 올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한다. ‘대전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를 주제로 세계가 직면한 경제·사회적 위기와 생태·환경 위기 앞에서 여러 사회 주체와 나라들이 어떤 합의를 해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특별 영상강연을 통해 디지털 및 자동화 기술 발달이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노동 및 도시 연구의 석학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기후변화가 도시의 삶에 어떤 정치·사회적 영향을 끼치는지 집중 조명한다. 도시사회학의 거장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세계화된 도시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의 문제를 다룬다. 첫날과 둘째 날의 다양한 세션을 통해 한국 사회의 녹색전환, 포용 금융, 도시의 공동체 경제 등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를 조망한다. 이와 함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구한말을 연상케 하는 격변의 시기라는 점에서 중국의 왕후이 칭화대 교수, 일본의 신도 에이이치 쓰쿠바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