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진(왼쪽 사진 오른쪽)·박선자씨 부부가 최태영 귀농귀촌활성화센터 사무국장과 만나 한껏 웃음꽃을 터뜨리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노영권·김혜진씨 가족.
[헤리리뷰] 녹색생활
전북 진안의 마을만들기 실험
전북 진안의 마을만들기 실험
산골 마을 전북 진안의 특별한 실험이 조금씩 꽃을 피우고 있다.
‘귀농귀촌 1번지’로 도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중에서 ‘마을 사람’으로 뿌리내리는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큰 소득을 올렸다는 부자 농부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지만, 마을의 지도자나 일꾼으로 성장하는 도시 귀농귀촌자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더불어 토박이 마을 지도자들의 성장 또한 눈부시다.
3년새 786명 정착…절반이 40대 이하
진안군 집계로, 지난 한 해 동안 진안고원에 새로 둥지를 튼 외지인은 159가구, 414명이었다. 2007년 이후 귀농귀촌자를 모두 합하면 320가구, 786명이나 된다. 연령대 또한 젊은 편이어서, 40대 이하가 절반을 차지한다.
진안은 해발 200~400m의 고원지대여서 농사지을 땅이 넉넉지 않다. ‘억대 수입을 올리는 농부’를 꿈꾸기는 어렵고, 귀농귀촌자들에게 정착금 따위의 금전적 지원도 제공하지 않는다. 변변한 기업이 있을 리 없고, 진학률 좋은 유명 고등학교도 하나 없다. 그런데도 진안에 살겠다는 사람들은 부쩍부쩍 늘어나고 있다.
진안 귀농귀촌 정책의 구호는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단순히 농사짓는 사람 하나보다는 농촌의 파이를 키우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안군 귀농귀촌활성화센터의 최태영 사무국장은 “농촌에서 필요한 사람은 전업 농사꾼이 아니라, 농사도 지으면서 농산물 가공과 유통, 새로운 특산물 개발 또는 아이들 교육과 복지, 문화 분야의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그렇게 들어오면 기존 주민들과 갈등을 빚지 않으면서 농촌의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안에 정착한 귀농귀촌자들은 상당수가 농사 외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군에서도 마을 간사 제도와 다양한 지원사업 등을 통해 귀농귀촌자들의 사업 기회를 적극 확대해 나가고 있다.
주천면 무릉마을의 서상진(56) 전 이장은 진안에 내려온 지 9년째. 본업은 건축이고 부업이 텃밭농사다. 처음에는 진안 내에서 많은 공사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외지의 일을 더 많이 했지만, 지난해부터는 1년 내내 진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 8년째 들면서 안정적으로 터를 잡은 것이다. “이득을 적게 보려 하고 항상 새로운 건축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이만큼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시골의 업자들은 타성적으로 공사를 하잖아요. 또 시골에 와서 돈 많이 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곳이 시골이지요. 대신 농촌의 보너스를 누리면 되잖아요.” 서씨는 마을 이장을 맡았던 2008년에 군 예산 4500만원을 지원받아, 펜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세련된 마을회관을 건립하는 ‘공적’을 남기기도 했다. 서씨는 최근에 발족된 진안 귀농귀촌자들의 모임인 뿌리협회의 회장도 맡고 있다. 서씨의 부인 박선자(60)씨 또한 진안의 ‘명물’이다. 키보드·색소폰·첼로·플루트·바이올린으로 구성된 느티나무앙상블의 사회자로 연 10차례가량 마을과 군청을 돌아가며 연주회를 진행한다. 소설가이기도 한 박씨는 숲 해설가, 향토사 해설가로도 활동한다. 농산물가공·교육·복지·문화인력 환영 2005년에 동향면 봉을곡마을에 귀농한 이재철(40)·박후임씨 부부는 오미자와 쌀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일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 이씨는 능길권역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공공부문 부위원장을 맡고 있고, 지난 연말에는 군 지원금 350만원으로 마을 폐교 한쪽에 마을박물관을 개관하는 일을 해냈다. 동네 교회의 ‘행복한 노인교실’ 운영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다. “농사를 배우자고 시골에 내려왔는데, 차츰 마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우리가 마을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지요. 처음에는 내가 마을 사람들을 바꾸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곳 사람들처럼 변했습니다. 나 자신을 놓으니까 힘든 것이 사라지고 편해졌습니다.” 이씨 부부가 만든 ‘오래된 길, 미래를 열다’라는 이름의 마을박물관에는 마을 노인들의 빛바랜 사진첩들과 농기구들, 1977년 초등학교 5학년생의 일기장, 마을 가게의 외상장부 등 희귀한 마을 유산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외지에 나가 있는 마을 출신 자녀들에게 박물관을 찾아보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박물관 운영을 맡을 수 있는 상근자를 1명 배치한다는 것도 꿈이지요.” 마을 간사 징검다리로 사업 모색 김성일(51)씨는 2006년 하반기에 서울의 직장을 정리하고 2007년 동향면 능길마을의 마을 사무장으로 내려왔다. 지난해부터는 마을 간사를 맡아 4년째 같은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지 80평에 건평 15평의 이층집을 신축했으며,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으로 운영하는 홍삼 가공공장에서 마케팅과 제품 개발 일도 하고 있다. “100만원가량의 월급이 보장되는 마을 사무장과 마을 간사를 맡았던 것이 저에게는 큰 기회였습니다. 경제적 안전판을 갖고 마을에 적응할 수 있었으니까요. 별도로 3~5년 정도 버틸 수 있는 금전적 여유를 준비해 두었던 것도 힘이 됐습니다. 홍삼진액(엑기스) 가공공장과 유기농 슬로푸드 체험관에 마을 사람들과 같이 1억원 이상을 출자할 수 있었지요. 20년을 한 직장에서 여러 부서를 두루 경험했던 것도 지금은 큰 도움이 됩니다.”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 때문에 작은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반년 동안 이곳 시골 학교를 다녔는데 갈등을 느끼는 것 같아요. 만약에 아내와 딸아이가 도시 학교를 가겠다고 결정한다면 그 뜻을 따라줄 생각입니다.” 올 1월부터 용담면 감동마을의 마을 간사를 맡은 노영권(28)·김혜진(27)씨는 예술인 부부이다. 20대의 젊은 부부가 17개월 된 딸아이(노숲에)까지 데려왔으니, 마을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하다. 도시에서 베이스기타 연주활동을 했던 노씨는 시골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 “나의 음악성을 농촌에서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쁩니다. 음악과 미술을 도농교류 사업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과 가까운 소리를 담을 수 있는 통기타와 멜로디언 연주도 준비하고 있지요. 아내의 전공은 아동미술인데, 우선 마을에 있는 몇몇 아이들부터 가르치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음악도 미술도 돈이 없으면 못하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문화사업을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농촌의 사회적기업가를 꿈꾼다는 노씨는 전주에서 함께 문화활동을 했던 동료 2명에게도 “진안으로 들어오라”고 적극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진안/글·사진 김현대 지역디자인센터 소장 koala5@hani.co.kr
주천면 무릉마을의 서상진(56) 전 이장은 진안에 내려온 지 9년째. 본업은 건축이고 부업이 텃밭농사다. 처음에는 진안 내에서 많은 공사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외지의 일을 더 많이 했지만, 지난해부터는 1년 내내 진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 8년째 들면서 안정적으로 터를 잡은 것이다. “이득을 적게 보려 하고 항상 새로운 건축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이만큼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시골의 업자들은 타성적으로 공사를 하잖아요. 또 시골에 와서 돈 많이 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곳이 시골이지요. 대신 농촌의 보너스를 누리면 되잖아요.” 서씨는 마을 이장을 맡았던 2008년에 군 예산 4500만원을 지원받아, 펜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세련된 마을회관을 건립하는 ‘공적’을 남기기도 했다. 서씨는 최근에 발족된 진안 귀농귀촌자들의 모임인 뿌리협회의 회장도 맡고 있다. 서씨의 부인 박선자(60)씨 또한 진안의 ‘명물’이다. 키보드·색소폰·첼로·플루트·바이올린으로 구성된 느티나무앙상블의 사회자로 연 10차례가량 마을과 군청을 돌아가며 연주회를 진행한다. 소설가이기도 한 박씨는 숲 해설가, 향토사 해설가로도 활동한다. 농산물가공·교육·복지·문화인력 환영 2005년에 동향면 봉을곡마을에 귀농한 이재철(40)·박후임씨 부부는 오미자와 쌀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일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 이씨는 능길권역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공공부문 부위원장을 맡고 있고, 지난 연말에는 군 지원금 350만원으로 마을 폐교 한쪽에 마을박물관을 개관하는 일을 해냈다. 동네 교회의 ‘행복한 노인교실’ 운영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다. “농사를 배우자고 시골에 내려왔는데, 차츰 마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우리가 마을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지요. 처음에는 내가 마을 사람들을 바꾸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곳 사람들처럼 변했습니다. 나 자신을 놓으니까 힘든 것이 사라지고 편해졌습니다.” 이씨 부부가 만든 ‘오래된 길, 미래를 열다’라는 이름의 마을박물관에는 마을 노인들의 빛바랜 사진첩들과 농기구들, 1977년 초등학교 5학년생의 일기장, 마을 가게의 외상장부 등 희귀한 마을 유산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외지에 나가 있는 마을 출신 자녀들에게 박물관을 찾아보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박물관 운영을 맡을 수 있는 상근자를 1명 배치한다는 것도 꿈이지요.” 마을 간사 징검다리로 사업 모색 김성일(51)씨는 2006년 하반기에 서울의 직장을 정리하고 2007년 동향면 능길마을의 마을 사무장으로 내려왔다. 지난해부터는 마을 간사를 맡아 4년째 같은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지 80평에 건평 15평의 이층집을 신축했으며,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으로 운영하는 홍삼 가공공장에서 마케팅과 제품 개발 일도 하고 있다. “100만원가량의 월급이 보장되는 마을 사무장과 마을 간사를 맡았던 것이 저에게는 큰 기회였습니다. 경제적 안전판을 갖고 마을에 적응할 수 있었으니까요. 별도로 3~5년 정도 버틸 수 있는 금전적 여유를 준비해 두었던 것도 힘이 됐습니다. 홍삼진액(엑기스) 가공공장과 유기농 슬로푸드 체험관에 마을 사람들과 같이 1억원 이상을 출자할 수 있었지요. 20년을 한 직장에서 여러 부서를 두루 경험했던 것도 지금은 큰 도움이 됩니다.”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 때문에 작은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반년 동안 이곳 시골 학교를 다녔는데 갈등을 느끼는 것 같아요. 만약에 아내와 딸아이가 도시 학교를 가겠다고 결정한다면 그 뜻을 따라줄 생각입니다.” 올 1월부터 용담면 감동마을의 마을 간사를 맡은 노영권(28)·김혜진(27)씨는 예술인 부부이다. 20대의 젊은 부부가 17개월 된 딸아이(노숲에)까지 데려왔으니, 마을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하다. 도시에서 베이스기타 연주활동을 했던 노씨는 시골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 “나의 음악성을 농촌에서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쁩니다. 음악과 미술을 도농교류 사업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과 가까운 소리를 담을 수 있는 통기타와 멜로디언 연주도 준비하고 있지요. 아내의 전공은 아동미술인데, 우선 마을에 있는 몇몇 아이들부터 가르치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음악도 미술도 돈이 없으면 못하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문화사업을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농촌의 사회적기업가를 꿈꾼다는 노씨는 전주에서 함께 문화활동을 했던 동료 2명에게도 “진안으로 들어오라”고 적극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진안/글·사진 김현대 지역디자인센터 소장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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