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 한 노인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폐지를 실은 수레를 밀어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불평등은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열쇳말이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난제들, 고통, 불안의 기저에 불평등이 있다. 소득과 자산 등 전통적 의미의 불평등이 여전한 가운데 불평등 의제는 공정성 담론에 부딪혀 길을 잃기도 하고, 기후위기, 고령화와 돌봄, 인공지능 등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뒤엉키고 뒤틀리기도 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원장 이봉현∙HERI)은 상생과 연대를 위한 대안 공론장을 지향하는 소셜코리아(운영위원장 윤홍식)와 함께 ‘다시, 한국의 불평등을 논한다’ 기획을 시작한다. 한국의 불평등 논의는 왜 견고히 이어지지 못하고 부침을 거듭하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편집자주
서울 흑석동 중앙대 후문과 맞닿은 교수연구동 401호. 폭염경보가 내린 지난달 28일 찾은 연구실은 온통 책으로 뒤덮였다. 작은 테이블 귀퉁이 위 찻잔 두 개와 노트북을 놓고 마주 앉기에도 비좁은 공간이다. 40년 가까이 불평등에 매달려온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의 시선은 오랜 세월 자신이 뭘 했는지 과거에 붙들려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뭘 더 해야 하는지 미래에 꽂혀 있었다. 고희를 맞은 원로학자는 2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구 결과가 학교 담장을 넘어 정책 의제화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했다.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을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학문적 뒷받침에 쏟고 싶어 했다.
계량할 수 없으나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깊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그의 공헌이 적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불평등 연구의 개척자 가운데 한 명인 그와 인터뷰로 기획을 시작한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요즈음 고민은 뭔지 궁금하다.
“그간 불평등의 다차원성 등을 연구해왔다. 이렇다 저렇다 아무리 얘기해도 영향력도 없고 (정책 집행자에게) ‘우이독경’으로 끝날 때가 많다. 제도적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고 있다.”
―정리가 아니라 새롭게 연구를 시작하는 것 같다.
“대학에서 다양하게 논의가 이뤄지지만 실질적으로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데 의미 있게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안적 정책 형성을 위한 이론적, 학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언제부터 불평등을 연구해왔나.
“1988년 박사 학위 논문이 미국과 일본, 스웨덴 등 세 나라 근로소득 불평등 비교 연구였다. 왜 고도로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로소득 불평등 정도도 다르고 그게 형성되는 과정도 다른지 규명하는 내용이다.
초기 내 관심은 계급 불평등이었다. 근로소득 불평등은 단순히 계급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따라 임금이 다르게 결정된다.”
―당시 불평등 연구할 때 주변 분위기는 어땠나.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유학생들 가운데 불평등 연구자는 많지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던 당시 분위기에 맞지 않았다.”
―최근 들어 소득과 자산의 집중이 심화하는데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되레 준 것 같다.
“맞다. 그 이유중 하나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제도적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탓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성장이 우선적 과제라는 인식의 팽배다. 경제계 입김이 크고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연구자의 문제는 없는 건가.
“과거에 비해 연구자는 양적으로 크게 늘었고 논의도 풍부해졌다. 그런데 논의가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채 정책 결정의 영역으로 제대로 이전되지 않고 있다. 결국 정책적인 임팩트(영향) 없는 논의에 그치는 현실이다.”
―불평등 이슈는 선거철 반짝 소비되고 마는 것 같다.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깊이 뿌리 박혀 있다. 경제 발전 초기 불평등이 심화하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면 줄어든다는 쿠즈네츠 가설이 불평등을 보는 경제학의 고전적 패러다임이다.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하는 인식이 내면화해 있다. 정부에 대한 평가도 성장률을 갖고서 많이 얘기하지 않나.”
―윤석열 정부 들어 불평등에 관심이 더 줄어든 것 같다. 보수의 정체성과도 관련 있나.
“불평등을 진보의 담론으로 본다. 복지도 진보의 담론이라고 생각해 그 용어조차 쓰지 않으려 한다. 왜곡된 현실 인식이다. 복지 국가는 비스마르크가 시작했고 보수가 주도했다. 되레 유럽 좌파 정당들은 20세기 초까지 복지에 반대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 복지가 아편처럼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약화시킨다고 봤다. 복지는 기본적으로 보수의 아젠다였다.
현대 국가에서 정부의 좌우 성격을 떠나 누가 국민의 삶을 더 잘 보장하느냐가 정당 간 경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간혹 불평등이란 용어를 기피하면서 양극화란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양극화 담론은 불평등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현실을 진단하는 정확한 개념은 아니다. 양극화는 가운데 즉 중산층이 붕괴되고 최상층과 최하층 양극단으로 쏠리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 최하층으로 집중은 이뤄지지 않았다. 실질적 소득 분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지난 2004년 7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전경, 저 멀리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등 고층건물이 보인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 자신의 노력이 보태져 더 많은 소득을 얻는 게 무슨 문제냐는 생각이 당연시 되며 능력주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넘어 대를 이어 세습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소득 최상위와 최하위 격차는 자녀의 교육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불평등’이고 할 수 있다.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는지에 따라 극복할 수 없는 형태로 불평등이 구조화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사람들이 능력주의(Meritocracy)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능력주의를 개념화한)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를 출신 배경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시스템이라 정의하고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했다. 엘리트에 의해 엘리트를 위한 엘리트의 지배가 능력주의라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희생과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 능력주의로 통용된다. 부자 집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서 그 덕으로 뭘 받는 것이 당연한 거라는 생각은 사실 ‘정유라(최순실의 딸)식 능력주의’에 불과하다. 교육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은 채 능력주의를 얘기하는 건 허구다. (구조적 불평등을 놔둔 채) 공정을 얘기하는 사람은 주로 소수 혜택받은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문제 삼을 뿐이다.”
―일종의 ‘절차적 공정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입의 기회는 철저하게 불공정한데 그걸 놔둔 채 절차만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른바 ‘좋은 불평등’이 잠시 논란이 됐다. 근저에 파이를 더 키웠다면 크기가 다르게 배분되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사실 모든 게 평등한 사회는 없다. 문제는 ‘부정의한 불평등’을 어떻게 줄이느냐다. 나름 인정할 수 있는 불평등은 어디까지냐는 문제다. 그 최소한 기준은 존 롤스의 정의론이라 볼 수 있다. 승자 독식이 아니라 패자의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맥시민(Maximin-최소 수혜자 최대 원칙) 원리다. 게임의 규칙에서 패자인 최소 수혜자가 최대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패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분배 규칙에 합의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복지 국가다.
능력주의 폐해의 전형적인 예는 능력 있으면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다는 거다. 프로 스포츠에서 일반화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스포츠의 논리가 일상 경제 논리로까지 파고들었다.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엄청난 보상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최고 능력자와 그렇지 않은 보통 사람들 사이 어느 정도 격차를 인정할 것인가는 각 사회 나름대로 보이지 않은 규범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미국에 가깝다.”
―최근 불평등이 개선됐다는 일부 연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평등 정도는 단기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다. 2~3년 짧은 기간을 놓고서 얘기하는 건 문제다. 최저임금을 2018년 올렸을 때 분배 효과가 나타났고 지니계수도 조금 떨어졌다. 반짝 효과는 있지만 크지 않을 뿐더러 불평등 구조가 해소된 것도 아니다. 거시적이면서도 다른 나라와 비교 분석하는 게 필요하다.”
―세대 간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조금 왜곡된 측면이 있다. 세대는 변한다. 2000년대 쟁점이었던 88만원 세대는 이제 주로 40대다. 세대 간 문제를 제기할 때 핵심은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를 나눠 특권과 박탈의 구조로 본다. 굉장히 정태적이다. 청년은 미래 노인이고 현재 노인은 과거 청년이다. 동태적 분석이 필요하다.”
―조세와 복지 정책을 통한 불평등 개선 효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거의 꼴찌다.
“‘복지 과잉이다’, ‘이제 복지국가다’. 이런 인식이 확산됐는데 완전 왜곡됐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내에서도 복지비 지출이 적지만 남미 국가들보다도 더 적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대비 공적 사회지출비중은 2018년 기준 남미 평균 13.2%보다 낮다.”
―왜 이렇게 낮은 건가.
“성장만 하면 모든 게 자동으로 해결된다고 봤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경제도 안 좋은 데 무슨 복지냐’고 말한다. 풍요로워야 복지를 할 수 있다는 식이다. 미국과 유럽이 그렇지만 복지는 가장 어려울 때 등장했다. 복지가 미국에서는 대공황 때, 영국에서는 복지의 기틀을 잡은 비버리지 보고서가 1942년에 전쟁을 하면서 나왔다. 먹고 남아돌아야 복지를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어려운 사람이 많아졌을 때, 많은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필요하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재정 준칙 시행 등 나라 곳간을 단단히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코로나19 때도 그런 생각이 지배했다. 우리나라는 팬더믹 때 미국 등 대부분 선진국보다 더 적게 나랏돈을 풀었다.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나 현 정부나 기조는 마찬가지다. 긴축 정책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한다. 시장에 맡겨서 해결하고 국가의 역할은 가능한 줄이고 부채도 늘리지 않고 재정 규모는 줄이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복지는 한번 늘리면 줄일 수 없는 성격이 있는데다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지 지출에 경직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복지를 비용이나, 낭비로 본다. 복지가 잘 갖춰진 북유럽과 상대적으로 덜한 영미형 국가를 비교 분석한 많은 연구들에서 북유럽 경제성장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관료들은 옛날 생각들을 습관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불평등 연구의 어려운 점 가운데 데이터 부재와 접근의 어려움 그리고 시계열 단절 등이 큰 것 같다.
“외환위기 때 실업기금을 지방정부로 내려보냈다. 막상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실업자가 몇명이나 있는지 몰랐다. 통계가 없어 제대로 지출하지 못했다. 개개인의 고용 상태에 관한 행정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지 체티 미 하버드대 교수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에 엄청난 조세 데이터 등을 활용했다. 토마 피케티도 마찬가지다. 행정 기관의 모든 데이터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행정데이터가 잘 구축돼 있을뿐만 아니라 그걸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다.”
―불평등 연구가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경제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정치경제학적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생산 체제가 과도하게 독점돼 있는 상황에서 그 안에 있는 피고용자는 나름 높은 수준의 임금이 보장된다. 여기서부터 임금 및 소득 격차가 시작된다. 기업의 구조가 독점이냐 경쟁 체제냐에 따라 자본과 근로 소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불평등이 최종 결과물이라면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 즉 제도 및 정책적 요인이 있다. 그걸 교육, 복지, 노동시장, 조세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 정치적 과정으로 보고 보다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2009년 1월8일 불평등연구회 회원들이 서울 중앙대 흑석동 캠퍼스에 모여 토론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인터뷰 마치고 연구실을 빠져 나와 인근 식당에서 중국냉면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복지국가는 통계국가다. 통계는 복지 정책의 근거”라며 통계 활용이 쉽지 않은 연구 현실을 다시 한번 안타까워 했다. 그는 어디선가 발표에 쓴 자료 2개를 기자의 손에 쥐어 줬다. 앞으로 정책 의제화에 집중하려는 그의 노력이 가깝게는 내년 총선 그리고 3년 반 뒤 있을 대선을 통해 불평등한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궁금하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지난달 7~8일 강원대 사회과학대에서 불평등연구회 심포지엄이 열렸다. 10개 세션에서 경제와 소득, 건강, 젠더, 교육과 사회이동 등 불평등을 열쇳말로 많은 영역을 아울렀다. 심포지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평등 토론장이다. 매년 포럼을 진행하는 연구회는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의 연구실에서 2007년 태동했다. 연구회를 이끌어온 신 교수는 80년대 미 위스콘신대에서 유학한 뒤 불평등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의 첫 대중서 또한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이었다. 10년 전 펴낸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는,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의 <불평등의 경제학>과 함께 불평등 연구의 길라잡이다. 계급, 노동, 복지 등 신 교수의 넓은 학문적 관심과 영역의 초점은 결국 불평등으로 모아진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