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전체 시가총액(발행 주식 수와 주가의 곱)의 국민경제(GDP) 규모 대비 배율은 이제 1.2배를 넘어섰다. 증시 무게가 드디어 실물경제의 무게를 앞서기 시작한 셈이다. 참고로 미국의 이 비율은 2배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또한 2020년말 현재 한국 코스피의 PER(주가수익비율, 주가/주당순이익)은 15배로 선진국 평균 20배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선진국과 비슷한 PER에 이른다면 기업이익 변화 없이도 주가가 30%나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화해서 보면 주가는 주식의 품질(기업이익)과 인기(각종 멀티플)로 구성된다. 주식의 인기(PER)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간 격차도 크다. 보통 성장률은 신흥국이 높지만 선진국은 금리가 낮고 경쟁력이 높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많이 상장되어 있고 크고 질 좋은 내수시장에서 안정된 수익을 누리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진국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기업들은 신흥국보다 대개 수익성이 좋고 배당도 많이 주는 편이다. 또한 그 나라 주가 프리미엄에는 통화정책도 영향을 미치는데 실제로 지난 수년간 선진국 주가는 저금리와 유동성 증가에 보다 탄력적으로 반응을 해왔다.
그렇다면 한국 증시는 프리미엄 관점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한국 증시는 지금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서서히 소속부를 바꾸는 과정에 있다고 진단된다. 최근 한국 주가 상승을 도운 가장 큰 요인은 반도체·바이오·플랫폼·배터리 등 성장산업의 약진에 있다. 물론 전통산업들도 해당 업종 안에서 나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금리가 약간 오를 수는 있겠지만 저금리 추세 자체가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내국인의 주식매수 열기도 길게 보면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 가계자산 중 금융자산은 20%에 불과하고 그중 주식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수급상으로도 주가 재평가 여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한국 증시가 높은 프리미엄을 받으려면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선진국 기업에 비해 여전히 낮은 이익률과 배당성향, 협소한 내수규모, 높은 수출의존도, 기업이익의 높은 변동성 등은 한국 증시가 지닌 약점들이다. 또한 혁신성장의 핵심기술력이 미국기업에 비해 약하고 시장 지배력도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빼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결정적인 건 다른 조건을 모두 갖췄다 해도 기업이익이 꾸준히 좋아지지 않는다면 이는 반쪽짜리 조건에 불과하다. 2021년에는 코로나를 딛고 40% 이상의 코스피 순이익 증가가 예상되지만 이후에도 이런 고성장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21년 실적에는 지난해 코로나로 인한 기저효과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증시 프리미엄이 보다 확실히 도약하려면 단지 한 해 이익의 개선보다도 이익의 낮은 변동성과 지속성 등 그 질이 더 중요하다. 한국은 아직 경기순환 업종이 많고 글로벌 소비재가 적은 편이고 판매가격 변동성이 높은 산업이 많다. 환율도 그 나라 증시 프리미엄과 연관성이 높은데 환율이 더 강해져도 우리 수출기업 성장에 별 어려움이 없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내수 크기 면에서 우리는 환율 강세가 내수를 이끄는 힘이 선진국보다 약한 편이다. 결국 코리아 프리미엄은 이런 조건들이 갖춰지면서 자연스럽게 꾸준히 높아질 것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면 단번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특히 세계를 지배하는 수출기업이 더 많이 나와줘야 한다. 한국 증시가 새로운 프리미엄으로 가는 도상에 있는 것은 맞지만 이는 장기 프로젝트로 봐야 한다.
김한진ㅣ KTB투자증권 수석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