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르다.’
투자의 거장 존 템플턴 경은 일찍이 이 말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문장이라고 했다. 역사가 완전히 똑같이 반복된다기보다는 지금 겪는 일들이 과거에 경험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가령 지금의 바이러스 위기도 전혀 새로운 사건이 아니며 진행 중인 유동성 장세 또한 예전에 몇 번이고 경험했던 사건이란 얘기다. 어디 그 뿐인가. 증시는 늘 변동성이 컸고 다양한 레퍼토리로 투자자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또한 주가는 오를 때 항상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올랐고, 모두가 안심할 때 갑자기 변덕을 부렸다. 이 모든 게 우리가 잊고 있을 뿐이지 다 경험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최근 증시는 예전과 무엇이 같을까? 우선 가파른 하락 다음에 온 가파른 주가 반등이 같다. 주식시장은 늘 하락이 가파를수록 반등 기울기도 가팔랐다. 2003년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지금이 그렇다.
위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부양책과 중앙은행의 정책도 예전과 비슷하다. 1950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13번이나 공격적인 금융완화(금리인하)를 단행했다. 평균 5년에 한 번꼴로 세차게 돈을 풀었다. 물론 지금 같은 제로금리는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이런 초저금리는 생전에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라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 유동성을 연료 삼아 주가는 강하게 치솟았다. 물론 그 중엔 짧은 랠리도 있고 아주 긴 강세장도 있었다. 어떤 경우는 원유 같은 원자재가 가세했고 또 어떤 때는 빌딩이나 집값이 슈퍼랠리의 주연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돈의 힘으로 자산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사람들은 ‘이번 유동성 랠리는 이래서 절대 꺾이지 않을 거야’라고 외쳤다. 하지만 시장은 결국 예상치 못한 이유로 조정을 보였고 시장은 지금까지 그렇게 순환을 해 왔다.
이렇듯 과거 사례를 참조해 이번 랠리가 좀 더 지속되려면 다음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첫째는 이제부터는 통화공급과 경기부양책보다 경기 자체가 시장을 이끌 거란 자신감이 나서 줄 차례다. 둘째는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물가나 금리가 계속 안정세를 보여야 한다. 사실 이 둘은 까다로운 조건이다.
한국 증시에서도 당장 시급한 건 수출 등 실물경기 호조와 기업실적의 개선이다. 우리 수출은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된 지난 4월부터 꺾였는데 수출이 제대로 돌아서지 못한다면 아무리 다른 게 화려해도 주가가 계속 오르긴 힘들다. 이번에도 역시 주가가 실적을 앞서 반영하는 놀라운 예견력을 뽐내려면 이젠 구체적인 지표 개선이 필수다.
결론은 증시가 ‘이번에도 다르지 않으려면’ 하반기엔 세계경제가 돌아서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의 개선’은 주가의 현상 유지를, ‘의미 있는 개선’은 상승 지속을, ‘지지부진’은 주가 하락을 뜻한다. 이번에도 ‘과거 장기 강세장과 다르지 않으려면’ 이젠 돈(유동성) 플러스 경기재료가 필요하다.
김한진 ㅣ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