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나 자산시장에 대한 전문가와 대중들의 판단은 놀랍게도 틀리기 일쑤다. 전문가들도 탐욕과 공포에 휘둘리고 종종 현재 상황만 좁게 보는 실수를 저지른다. 지난해 나스닥(35% 상승)을 필두로 세계증시가 뜨거웠다. 이런 주가 랠리의 진짜 동력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먼저 경기 쪽에서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세계 경제 성장률은 2017년 3.8%에서 지난해엔 3%로 낮아졌다. 절대치는 양호하나 시장이 중요시하는 모멘텀(기울기)은 낮아지고 있다. 미국도 성장률이 2018년 이후 계속 낮아지고 있고 중국은 예상치를 번번이 밑돈다. 전 세계 제조업 생산지표도 둔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지금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경기는 최근 글로벌 주가상승을 방해하지 않는 요인이지, 상승을 이끈 핵심엔진으로 보긴 어렵다. 경기 밑단의 기업이익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당초 10%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전년 주당순이익(EPS)은 제자리였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신 세계증시는 대부분 주가수익비율(PER)을 높여 주가를 끌어올렸다. 세계에서 빼어난 기업들을 많이 보유한 미국 3대 지수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S&P500의 주가수익비율은 15.4배에서 20배로, 나스닥은 19.7배에서 27.5배로 각각 높아졌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최근 세계증시를 앞에서 이끈 건 미래의 경기와 기업실적에 대한 기대였고 이를 뒤에서 밀어준 건 ‘유동성(돈)’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미 통화 당국은 3번이나 연달아 금리를 내렸고 단기국채도 월 600억달러씩 사들였다. 경기 급랭 때나 쓰는 정책이었다. 물론 올해도 지난해처럼 유동성으로 랠리를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시장은 빠르게 식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각국의 주가수익비율은 1년 전보다 20~40%나 높아졌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리 인하 대포’를 세 방이나 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 타결도 경기호황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1차 합의는 지난해 9월 부과된 1200억달러의 중국수입품에 대한 7.5%포인트 관세인하와 추가관세를 미룬 게 전부다. 앞서 부과한 2500억달러어치 25% 관세는 그대로다. 이란 사태와 코로나19 이슈까지 사건은 쉴새 없이 터지고 자산시장은 여기에 쏠려 변동한다. 주가가 돈의 힘으로 오르내리고 이벤트에 휘둘리고 있으나, 지금 중요한 건 시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앞으로 시장을 움직일 핵심변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올해 경기나 기업이익이 시원치 않을 경우엔 주가가 흔들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글로벌증시는 미래의 호재를 너무 앞당겨 사용하고 있다. 특히 주가수익비율이 가장 많이 오른 미국 기술주가 가장 부담스러운 이유다. 어쩌면 올해 투자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지금의 익숙한 환경에 대한 안일한 대응일지도 모른다. 시장 심리가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반대쪽을 모색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