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12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할 때의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8일 숨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마지막 5년은 파란만장했다. 장녀의 ‘땅콩 회항’ 논란으로 시작해 지난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을 박탈당하기까지 ‘재벌 갑질’, ‘오너리스크’ 등의 수식어가 조 회장의 마지막 길을 따라다녔다.
시작은 2014년이었다. 그해 12월5일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했다.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대한항공 항공기 일등석에서 조 전 부사장은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되돌리고 박창진 당시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이를 계기로 한진 일가의 ‘갑질’ 논란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 전 부사장은 이듬해 2월 1심에서 항공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조 회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2014년 12월12일 대한항공 본사 로비에서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 조현아의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 번 바란다”며 고개를 숙였다. 조 회장은 사건의 원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아 죄송하다”고 답했다.
한동안 ‘자숙’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한진 일가는 2018년 또 한번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번엔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주인공이었다. 그해 3월16일 조 전 전무는 본사에서 회의 도중 광고업체 관계자 등에게 음료를 뿌렸고 한달 뒤 언론 보도를 통해 ‘물컵 갑질’이라고 폭로됐다. 조 전 전무는 베트남 다낭으로 출국했다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4월15일 급히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4월19일에는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운전기사, 가정부 등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갑질’ 논란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다. 한진 일가에 대한 여론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오너 리스크’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고 대한항공 가족경영 체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진 일가의 각종 갑질 논란에 대해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는 조 회장의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확대됐다. 조 회장도 지난해 6월28일 검찰 소환을 시작으로 여러차례 포토라인 앞에 서야 했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 회장은 구속은 면했지만 그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국세청은 11월 조 전 회장을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국민연금도 팔을 걷어부쳤다. 지난 2월1일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해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날 검찰은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이 대한항공 직원 등을 동원해 해외에서 구입한 명품 등을 밀수입했다며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했다. 3월26일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 결정을 했고 이튿날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그의 대표이사 연임은 결국 실패로 일단락됐다.
대한항공이 5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조 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대한항공 쪽은 “조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며 애도했다.
송경화 최하얀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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