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등 참석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8년 12월 결산법인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리면서, 올해 주총에서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활동도 일단락됐다. 국민연금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을 부결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지난 29일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으로 내놓은 정관변경안이 부결되는 등 대부분은 대주주와의 표대결에서 패배했다. 시장의 지지 확보, 독립성 논란 불식, 연금조직 내부의 판단 역량 강화가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른다.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 주총을 거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 활용이 힘을 받으려면 시장의 지지를 더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주주 배당 중시’뿐만 아니라 횡령·배임 등 법 위반 우려, 임원 보수한도 적정성 등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을 더 넓힐 예정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29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에서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주주활동을 한다면 국내 자본시장도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한 단계 성장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 정착할 수 있도록 후속조처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투자한 주식의 장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을 확대하려는 국민연금의 발목을 잡는 건 ‘독립성 논란’이다. 보수 언론과 경제지 등은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려 할 때마다 정부가 국민 돈으로 기업을 좌지우지한다며 ‘연금 사회주의’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20명 가운데 5명이 정부 쪽 현직 장차관이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당연직으로 참석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연기금 등은 정부와 독립적으로 기금 운용조직을 꾸린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캐나다 연금이다. 캐나다 연금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운용조직인 시피피아이비(CPPIB)를 두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민연금 투자자산 내 주식보유 비중은 34.8%(2018년 기준)인데 이 가운데 절반이 국내 주식(109조원)이다. 국내 기업 시가총액의 7%에 해당하는 규모로, 영향력이 막강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자칫 정부의 간섭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의 한 위원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면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은 독립성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에서 빠지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종현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은 “나라마다 연금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기금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라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민의 노후를 보장할 국민연금 운용방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논의하려면 정부 쪽이 들어갈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도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9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의사결정 구조에 개선할 점이 많다”며 “보건복지부가 올해 말까지 관련 지침을 만들 계획인데 앞당겨야 할 것 같다. 지침을 마련해 내년 주총 때는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 내부 및 위탁운용사에 소속된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실무자들의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의결권 행사 의지와 판단 역량 강화도 요청된다. 또 다른 수탁자책임전문위 위원은 “여러 의결권 자문기관이 이사 선임 안건 찬반 등을 놓고 엇갈린 판단을 내놓을 경우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아니라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위(가입자단체 및 정부 추천 전문위원으로 구성)에 해당 안건을 올릴 수 있지만, 대한항공은 자문기관 대부분이 조 회장의 이사 선임에 반대 권고를 했음에도 굳이 수탁자책임위에 안건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총 당시의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국민연금이 몸을 사리게 됐다는 얘기다. 이번 주총 국면에서 국민연금은 재벌 관련 이슈는 대부분 수탁자책임위에 판단을 맡겼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 등) 투자를 한 쪽이 직접 의결권 행사를 하는 게 옳다. 국민연금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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