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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신호탄 쏜 주주행동주의, ‘지배구조 개선’ 동력 이어지나

등록 2019-03-28 18:39수정 2019-03-28 19:52

자산운용사 “큰 변화의 시발점
올해 주주 제안 엄청나게 늘어”
외국선 이미 주주행동주의 확산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토종 주주행동주의 활동 깨워
먼저 도입한 일본 책임투자 급증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소수 주주권 강화 위한 제도 정비
사모펀드 규제 완화 등 검토할 때
주주행동주의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통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직 연임을 막은 것은 그 신호탄이었다. 자본시장에서는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활동과 토종 주주행동주의 펀드 출현 등으로 올해부터 한진그룹 외 다른 기업에서도 지배구조 개선 효과가 나오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28일 “장기적으로 보면 올해는 큰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주주제안이 별로 없었는데 올해 엄청나게 늘었다”며 “올해 소수주주의 행동이 사외이사나 정관을 변경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내년에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더 활발해질 테니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주행동주의란 주주가 경영에 직접 관여해 기업 및 보유주식 가치의 상승을 추구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주주행동주의 활동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세계 행동주의 펀드 규모는 2017년 1256억달러로 2011년 509억달러에 견줘 147% 성장했다. 미국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은 행동주의 펀드가 지난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이사 선임 반대 등에 나선 활동이 전세계적으로 651건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반면 국내 주주행동주의 활동은 그동안 미약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아시아에서 펼친 활동 비중을 보면 한국(6%)은 일본(32%)이나 홍콩(24%), 중국(10%)에 미치지 못한다. 김상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외국 펀드가 국내 기업을 탈취해 간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며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해도 여론이 호응을 얻기 어려웠고 제도적으로 외국인 투자자와 같은 소수주주가 행동주의를 실현하기는 불리한 환경이었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 동안 국내 기업지배구조는 개선되지 못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가 공개한 조사를 보면, 한국은 2016년과 2018년 연속 9위를 차지했다. 일본(7위)이나 타이(6위), 인도(7위)보다 순위가 낮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민이 깊었다. 특히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끝나면서, 가만히 있어도 투자 기업이 고수익을 안겨주던 시절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대한항공처럼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도 없이 임원이 된 총수 일가가 갑질 등으로 기업 이미지를 갑자기 훼손해 자산 수익률이 급락하는 리스크에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기업의 이익이 주주가 아닌 총수 일가에 빼돌려진 경우도 많았다. 결국 고객 노후자금 등을 지키기 위해선 투자한 기업으로 하여금 배당을 늘리게 한다든지, 기업 가치가 떨어진 기업에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토종 주주행동주의 활동을 깨웠다. 29일 한진칼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과 사내이사 선임 등을 두고 표 대결을 하는 케이씨지아이(KCGI·강성부 펀드)는 국민연금의 지원사격을 기대하고 있다. 오진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불러올 나비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먼저 도입한 일본의 경우 주주행동주의 등 책임투자 규모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에 이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 등은 행동주의 사모펀드 출시를 검토 중이다. ‘개미 투자자’가 가입할 수 있는 행동주의 스타일의 공모펀드도 있다. 주주가치포커스펀드를 운용하는 정용현 케이비(KB)자산운용 매니저는 “공모펀드 시장 자체가 좋지 않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이 많이 소개되면서 판매처에서 훨씬 고객들에게 상품을 설명하기 쉽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자본시장에선 소수주주들이 대주주를 견제하는 데 부족한 점이 많다는 아쉬움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같은 소수주주권 강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모펀드의 10% 경영참여 요건과 헤지펀드의 10% 초과 보유주식 의결권 제한 요건 등 규제를 풀어 산업을 대형화·다각화하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국회에 묶여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이 법안심사에 의지가 없어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4월 법안심사 소위에서도 논의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대한항공 주총에서 보듯 의결권 자문기관이 반대의견을 권고했지만,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찬성한 민간 운용사들의 독립성 제고도 과제로 꼽힌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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