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사내 등기이사 재선임에 실패하자 시장은 “(기업지배구조에서) 역사적인 사건”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고 의미를 달았다. 연임 부결 소식을 시장 참가자들이 “기업 체질 개선이 시작되는 신호”로 해석하면서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 계열사 주가는 일제히 동반 상승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대한항공 주식은 전 거래일보다 2.47% 오른 3만3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조 회장 연임 성공·실패가 예측 불허인 상황에서 개장 직후 보합권에서 등락을 거듭하더니 10시께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상승폭을 키우며 장중 한때 오름폭이 5%를 웃돌기도 했다. 대한항공 우선주(4.78%), 한진(1.92%), 지주회사 한진칼(0.39%), 진에어(0.45%) 등 다른 한진 계열사 주식도 상승 마감했다. 그동안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것을 넘어, 연임 불발로 주주가치가 제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시장은 해석했다. 반면 이날 코스피 전체 종목은 전 거래일보다 3.18(0.15%) 내렸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호텔을 포함한 무리한 투자, 비영업자산 장기 보유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등이 한진그룹 전반의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이었다”며 “이번 조 회장 연임 실패는 한진칼, 한진,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전반에 체질 개선이 실제로 시작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집단 총수가 주총 표 대결로 경영권을 박탈당한 전례가 없었던 만큼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일제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 회장의 연임 반대에 힘을 실어준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야말로 국민들이 주인인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 대한항공의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은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고 논평했다. 그는 “재벌기업 총수도 국민과 주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한진그룹의 경우 총수 일가의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너무나 극명하게 나타나다 보니 주주들에게도 이 부분이 전달된 것 같다”며 “앞으로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있는 총수 일가의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들도 긴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 센터장은 “예전엔 주총 안건이 올라오면 걸러지는 것 없이 다 통과되는 게 당연시됐는데 이번 사례는 시장의 우려가 있는 사안이 있을 때는 갑론을박이 이뤄지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면서 회사에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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