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건물. 연합뉴스
지난 5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의 자문기구인 감리위원회 위원 8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세차례 만나 한번에 10시간 이상씩 마라톤회의를 열었다. 삼성바이오에 대한 감리를 진행한 금융감독원이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해 중징계를 요구하는 조처안을 제출하자, 증선위 정례회의에 앞서 해당 사안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당시 감리위원들은 금감원 조처안을 토대로 삼성바이오 회계처리 변경의 고의성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현행 외부감사법상 감리위원장을 포함한 감리위원은 9명이지만, 당시 삼성바이오와 이해관계가 있는 한 위원이 제척돼 8명이 안건을 심의했다. 지난 14일 증선위가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변경은 고의 분식회계라고 결론을 내린 뒤, 외부 전문가 감리위원 2명이 소회를 밝혔다. 이한상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증선위 결과 발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삼성바이오는) 너무나 명명백백한 고의에 의한 분식회계”라며 “이 건은 회사와 회계법인이 유착해 상장을 앞두고 모든 무리수를 동원해 회사의 순자산과 이익을 부풀린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5월에 제출한 의견서의 마지막 장을 공개하며 “감리위원회를 관찰하면서 회사 경영진의 회계에 대한 태도도 문제지만, 관련된 회계법인들의 일탈 행위 및 비윤리적 행위도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며 “(증선위가) 고의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은 자본시장 및 회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최대의 악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이번 기회에 회사와 회계법인에 엄중한 조처를 취하여 자본시장에 제3자와의 거래 없이 검증되지 않는 수준의 공정가치를 이용해 회계 변경으로만 순이익과 순자산을 늘리는 행태는 절대 용인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대한민국 경제가 잘되려면 자본시장이 잘 작동해야 하고, 자본시장이 잘되려면 그 근간인 계약 그리고 그 근원 정보인 회계가 바르고 정확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라며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서며, 올바른 결정은 바른 회계정보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글을 남겼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감리위원은 ‘사필귀정’으로 보면서도, 회계 이슈가 실종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 위원은 1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결국 삼성바이오 스스로 무너진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이 나오기 전이었던 당시 감리위에서는 2011년 국내에 도입된 ‘원칙 중심’의 회계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에 비춰볼 때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부합하는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을 드러내며 논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내부문건이 나온 뒤 고의 분식회계가 너무나 명백해져 상황은 간단하게 정리됐다. 그는 “내부문건에 명백한 고의가 포함된 이상 회계기준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됐고 회계 논의는 사라져버려 허망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당시 삼성바이오의 지분법(관계회사) 적용에 주목했다. 그는 “회계법인 입장에서도 관행상 2012년께 삼성바이오가 80%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로 보는 데 무리가 없는데, 이를 지분법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 고심했다”고 말했다.
박수지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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