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처리의 중과실로 매매거래가 정지된다고 발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한겨레>가 단독보도한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의 존재(11월1일치 1면)는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14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고의적이라고 판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용범 증선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내부문건은 재감리 기간에 금융감독원에 제보가 됐고, 금감원이 새로운 조치안을 만들 때 매우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는 증거로 제출된 내부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증선위의 2차 심의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면서 지분법을 적용해 4조5000억원의 회계상 이익을 얻은 게 고의 분식회계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었다. 앞서 증선위는 지난 7월 1차 심의를 마치면서 2015년뿐만 아니라 에피스가 설립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 회사에 대한 회계처리가 적절했는지도 판단하라며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구했다. 금감원의 첫 조치안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에 에피스를 단독지배(종속회사)에서 공동지배(관계회사)로 바꾼 게 고의 분식회계라는 점만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증선위 2차 심의 결과는 이를 명확히 하며 시작했다. 금감원은 재감리 결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종속회사로 회계처리한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증선위는 이 기간에 삼성바이오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고 보면서도 고의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2년과 2013년의 경우에는 국제회계기준이 2011년에 국내에 최초로 도입되었고, 삼성바이오와 에피스가 각각 2011년과 2012년에 설립된 점, 지배력 관련 새로운 회계기준서가 2013년에 시행된 점을 고려해 ‘과실’로 봤다. 2014년에는 회사가 콜옵션 내용을 처음으로 공시하는 등 콜옵션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였던 점을 고려해 위반 동기를 ‘중과실’로 판단했다.
김용범 위원장은 “증선위가 주목한 것은 바이오젠과 맺은 합작계약서 내용이다. 신제품 추가나 판권 매각 등과 관련해 바이오젠은 동의권을 보유하고 있다. 동의권 등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계약상 약정에 의해서 (처음부터) 지배력을 공유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애초 금감원이 낸 첫 조치안에는 2012~2014년 회계처리에 대한 판단이 없었음을 볼 때, 증선위의 2차 심의 결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범위가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증선위는 2015년 회계처리에 대해선 고의성을 인정했다. 2015년에 갑자기 에피스 보유주식을 지분법으로 변경해 회계처리할 이유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평가차익을 인식하는 것은 더욱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에피스를 2012년 설립 당시부터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공동지배하는 관계회사로 봤다면 2015년 회계처리기준을 변경할 필요가 없고, 그 과정에서 평가차익이 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삼성바이오 내부문건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증선위는 금감원의 추가 조사 내용과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을 검토한 결과, 삼성바이오는 2015년 이전부터 콜옵션 부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하지 않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을 모색했다고 결론지었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콜옵션의 공정가치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사전에 마련했고 이에 맞춰 외부평가기관의 평가 불능 의견을 유도해 과거 재무제표를 의도적으로 수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콜옵션 부채만을 공정가치로 인식할 경우 회사의 재무제표상 자본잠식이 될 것을 우려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력 변경을 포함한 다소 비정상적인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즉 삼성바이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회계를 사후적으로 맞추거나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편법적인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협의를 진행하는 등 회계 원칙은 무시됐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지배력 변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 원칙에 맞지 않게 회계처리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면서 이를 고의로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용범 위원장은 “삼성바이오가 이미 확정된 재무제표의 일부 내용을 사후에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한 내용들이 있었다”며 “증선위는 피조치자(삼성바이오)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보장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완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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