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16일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과 관련한 이행 확약서를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에 발송하면서,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 대신 ‘자율 구조조정’ 쪽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산은과 수은은 17~18일 사채권자 집회를 하루 앞두고,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최종안을 던졌다. ‘가입자 손실 최소화’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해 고심해온 국민연금은 수용 여부에 대한 입장을 늦어도 17일 오전까지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산은과 국민연금은 회사채 상환 보장 방안의 법적 효력 유무를 두고 협상을 지속해 왔다.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안의 ‘만기 3년 유예, 3년 분할 상환’ 조건은 사실상 ‘6년 만기 회사채’를 받으라는 것”이라며 원리금 상환을 법적으로 보증해줄 것을 요구해온 탓이다.
이날 산은과 수은은 ‘회사채·기업어음(CP) 상환을 위한 이행 확약서’를 32곳의 기관투자자에 발송했다. 이행 확약서에 나타난 ‘회사채의 원리금 상환을 보강하는 장치’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산은은 자금을 별도 관리하는 에스크로 계좌를 만들어 만기일 한달 전에 갚아야 할 원리금 전액을 예치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오는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대우조선 회사채 만기를 3년 연장해준다면 대우조선은 2020년 7월21일부터 회사채를 분할 상환해야 한다. 이 경우 2020년 6월 말에 상환자금을 계좌에 넣어두겠다는 것이다. 에스크로 계좌는 회사채를 갚을 돈을 대우조선이 딴데 쓰지 못하도록 출금을 제한하는 계좌다.
산은은 여기에 회사채 등 상환용 자금 1천억원을 따로 떼어 예치해두겠다며 최소한의 회수 장치를 보강했다. 대우조선이 회사 명의의 별도계좌에 회사채와 기업어음의 청산가치(6.6%)인 약 1천억원을 입금해 투자자에게 담보로 제공하도록 했다. 국민연금 등이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회사채 투자자들이 챙길 수 있는 청산가치는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왼쪽)과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은은 다음으로 2018년부터 대우조선을 해마다 실사해 회사가 상환능력이 있다고 확인되는 경우, 회사채 조기 상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회사채 유예와 상환기간을 단축해 채권을 갚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사채권의 최종 만기일까지 산은과 수은이 신규 자금 지원을 이어간다는 내용도 이행안에 포함됐다.
상환 확약을 구두 약속이 아닌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남길 것을 요구해온 국민연금은 이날도 수용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 채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투자위원회가 연금 가입자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만 밝혔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투자자의 판단 잘못으로 손실을 자초한 상황이 아니라, 분식회계로 숨긴 재무제표와 신용등급만 믿고 투자하다 손해를 봤기 때문에 대주주로서 산은이 보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또 산은과 수은이 신규 지원하기로 한 2조9천억원의 자금에서 회사채를 상환해준다는 약속은 확실한 보장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신규 자금은 대우조선의 선박 건조 등 운영자금과 협력사 납품대금 결제 용도로 우선적으로 사용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향후 신규 수주 등 경영 정상화로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한 지원 자금이 바닥 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산은이 국민연금 쪽에 제시한 확약서는 대우조선이 자체적으로 상환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신규 자금으로 채권자에게 상환우선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산은과 금융당국은 국민연금의 지급 보증 요구를 재차 거부해, 사실상 공을 국민연금으로 넘긴 상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날 “산은법이나 수은법에서 지급보증은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고 못박았다. 정부는 이날 오후 임 위원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어 피플랜에 따른 후속대책을 점검했다. 임 위원장은 “국민연금도 연기금 관리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광덕 김경락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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