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싱가포르의 한 환전소에서 환전상이 파운드화를 세고 있다. 싱가포르/AFP 연합뉴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24일 가결되면서 ‘패닉’이 세계 금융시장을 덮쳤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이 시장 불안 진화를 위해 필요시 유동성 공급에 합의했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례적으로 우려 성명을 내어 세계 금융시장에 달러를 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연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앙은행들과의 기존 스와프를 통해서 달러 유동성을 필요한 만큼 제공할 준비가 됐다”며 “국제 금융시장의 압력은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주요 7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도 화상회의를 하고 금융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조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이 밝혔다. 연준을 비롯해 주요 7개국 중앙은행의 이번 조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공조로 평가된다. 이는 브렉시트가 몰고 오는 금융시장 등 경제에 대한 충격이 그만큼 크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앞서 영국의 파운드화 값은 이날 한때 30년 내 최저치인 1.32달러대로 11%나 폭락했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일본의 엔화 값은 폭등해 장중 100엔 선이 무너지는 등 세계 외환시장은 브렉시트의 충격파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먼저 매를 맞은 곳은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열렸던 한·중·일 아시아 시장이었다.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값은 오전 한때 99엔대까지 폭등했고 엔화 초강세를 우려한 닛케이지수는 7.9% 폭락 마감했다. 투표 결과가 ‘탈퇴’로 확정된 뒤 열린 유럽 증시는 개장 초반부터 폭락세를 나타냈다. 영국 증시(FTSE100)는 한때 9% 가까이 떨어졌고, 독일 증시(DAX30)와 프랑스 증시(CAC40)도 장중 10%대까지 낙폭을 키웠다.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영국 여론이 ‘잔류’로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베팅했던 탓에 불안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시장 전문가들은 후폭풍이 적어도 다음주 초중반까지는 이어지고, 바닥을 다진 뒤에나 안정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하반기 세계 경제 회복세에 대한 기대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달러당 1179.9원으로 전일 종가보다 29.7원(2.58%)이 올랐다. 한때 1180.3원까지 올라섰지만, 당국의 개입(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등으로 1170원대에서 장을 마쳤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61.47(3.09%) 내린 1925.24로 장을 마감했다. 투표 마감 직후에 ‘잔류’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장 초반 2000을 돌파했으나, 집계 추이가 반대로 기울자 한때 1892.75까지 밀려났다. 이날 일중 코스피 변동폭은 108.8로 2011년 8월9일 이후 가장 큰 폭이었을 정도로 극심한 혼란을 보여줬다. 코스닥에서도 장중 거래가 일시 정지되는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의 급락 장세가 연출됐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시장 불안을 진화하기 위해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날 기획재정부는 최상목 기재부 1차관 주재로 두 차례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범정부 합동 점검 대응체계를 가동해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파급 영향을 최소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