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을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24일 출시 첫날 은행 지점이 문을 열기도 전에 대출자들이 줄을 서더니, 하룻만에 한 달 한도인 5조원이 동이 나버렸습니다. 이틀째인 25일에도 열기는 이어져, 4조원가량 추가 대출이 나갔습니다. 불과 이틀새 9조원 가까이 대출 갈아타기가 이뤄진 것입니다. 애초 금융당국이 설정했던 월 한도 5조원은 안심전환대출 출시 첫날부터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셈입니다. 누적 실적 10조원을 넘어선 26일부터는 5월분 물량 5조원을 끌어 당겨 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추세라면 금융당국이 애초 계획했던 20조원도 빠르면 27일 늦어도 다음주 중에는 다 소진될 것 같습니다.
출시 초기 이런 엄청난 반응에 금융당국도 적잖이 놀라고 당황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금융당국은 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은행 관계자, 전문가들과 수차례 점검회의를 가졌는데, 대박이 날 것이라는 의견과 잘 안 팔릴 것이라는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갈렸다고 합니다. 이 상품이 금리를 낮춰주는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당장 원금을 분할상환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기존에 이자만 갚던 대출자들이 선뜻 갈아탈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기가 무섭게 안심전환대출은 대박이 났습니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은 열풍을 불러온 배경은 낮은 금리입니다. 정부는 변동금리·만기일시상환 방식에 집중돼 있는 대출 구조가 가계부채의 큰 위험요인이라고 보고, 이를 고정금리·장기분할상환 방식의 안정적인 구조로 바꾸기 위해 안심전환대출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정부는 대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기존 변동금리보다 안심전환대출의 고정금리를 더 낮게 책정했습니다.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더 높게 형성되는 시장의 상식을 뛰어넘은 것이지요. 더욱이 상품 출시 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75%로 인하하면서, 안심전환대출의 금리는 애초 예상보다 더 낮은 연 2.5~2.6%선으로 결정됐습니다. 5년마다 금리가 조정되는 금리조정형의 대출금리는 연 2.53~2.63%, 만기일까지 동일한 금리가 적용되는 기본형은 연 2.55~2.65%입니다. 현재 평균 연 3.5% 수준인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에 견줘 무려 0.9%포인트 가량 낮습니다. 2억원을 대출받은 사람이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면 한해 180만원의 이자액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게다가 갈아탈 때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고정금리이기 때문에 향후 시장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도 없습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1%대로 내리면서, 금리가 거의 바닥 수준에 도달했고 향후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에 따라 우리나라 시장금리도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도 안심전환대출 수요가 늘어난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안심전환대출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자, 일선 현장에선 상당한 혼란과 여러 논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선 형평성과 관련한 논란입니다. 안심전환대출은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지 1년 이상이 지난 변동금리 대출자 또는 원금을 아직 갚고 있지 않은 대출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러다보니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저축은행·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빌린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은행권보다 금리가 비싼 제2금융권 대출의 부실 위험이 더 크고, 제2금융권 대출자들의 형편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데, 이들을 대상에서 처음부터 제외해 놓은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애초에 제2금융권 대출도 대상으로 고려했지만, 검토 결과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은행권 대출만을 대상으로 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상품을 출시하기 무섭게 제2금융권 대출도 포함시켜 달라는 여론이 빗발치자, 금융당국도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당장 제2금융권까지 안심대출이 확대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2금융권 업계의 입장을 조율해야 하고, 전체 한도 확대와도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고정금리, 분할상환 방식의 대출자들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고정금리 대출자보다 낮은 이자를 물고 있는 변동금리 대출자들한테는 더 싼 고정금리의 대출로 바꿔주면서, 기존 고정금리 대출자는 계속 높은 고정금리를 부담하라고 하는 것이니 불만이 터져 나올 만하지요. 특히 정부가 그동안 고정금리 대출을 적극 장려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말을 충실히 따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는 상황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명확한 것 같습니다. 안심전환대출의 목적이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고 만기일시상환을 장기분할상환으로 돌려 가계부채 구조의 건전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고정금리, 분할상환 대출자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관련한 혼란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기 위해선 엘티비와 디티아이를 다시 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전에 대출 받을 때보다 집값이 떨어져서 대출액이 엘티비 기준인 70%를 넘어버린 경우는 바로 전환이 안됩니다. 엘티비 기준을 초과한 만큼 대출금을 갚아야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은퇴 등으로 소득수준이 줄어들어 디티아이를 초과한 경우도 대출금을 일부 갚아야 전환이 됩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은행 지점을 찾아왔다가 대출금을 일부 갚아야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발길을 돌린 고객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금융당국은 이런 고객들의 경우 안심전환대출 대신 최근 자격 조건이 완화된 주택금융공사의 또다른 고정금리 장기분할 대출인 ‘채무조정 적격 대출’을 이용하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 상품은 기존의 엘티비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대신 금리는 지난 19일 기준 연 3.01~3.96%로 안심전환대출에 견줘 높습니다.
안심전환대출 총 한도인 20조원이 다음주까지는 다 찰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에서도 한도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도를 2배로 늘린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한도를 확대할지에 대해 결정된 것은 없다고 합니다. 금융당국에서는 한도 확대가 결정돼도 추가 한도는 하반기에나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주중에 20조원의 한도가 모두 소진되면 3개월 이상 안심전환대출 상품 판매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금융당국이 선뜻 한도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한도 확대를 위해선 주택금융공사의 자본금을 확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직접 재정으로 자본금을 늘리거나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주택금융공사에 추가 출자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일어날 게 뻔합니다. 안심전환대출이 원금 상환 여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대출자만 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출자를 통해 한도를 확대하면 “재정을 동원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이자 부담만 낮춰준다”는 비판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대출자들에게 한도를 계속 확대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게 되면, 신규 대출을 받을 때 고정금리 상품을 선택하지 않고 추후에 갈아탈 것을 고려해 변동금리 상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 가계부채 구조 개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금융당국의 고민거리입니다.
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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