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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자선사업도 경영이다… ‘혁신’ 큰물결

등록 2007-05-14 17:20수정 2007-05-14 19:05

빌 게이츠 · 워런 버핏
빌 게이츠 · 워런 버핏
[19돌 창간특집] 다른 금융 다른 사회
⑤ 기부산업
미국, 전문 경영기법 도입한 ‘벤처 자선’ 활발
게이츠재단 등 각분야 전문가 대거 영입
목표시장 정해 전략적 접근…사후평가 중시

“우리 재단은 금세기 안에 사라질 겁니다. 330억달러(약 30조원)을 모두 다 써버릴 계획이니까요.”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의 미국 북서부 지역 사업담당 케이티 홍은 재단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소개를 시작했다. 기부자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올해의 경우 최소한 30억달러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은 세계 최대 거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데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다시 자신의 재산 중 70%를 기부하기로 해 유명해진 자선 재단이다.

그러나 게이츠재단의 명성이 그 기부자의 유명세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게이츠재단은 자선사업 운영 방식을 혁신적으로 꾸려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나 아내(멜린다 게이츠) 둘 중 한 사람이 숨치고 50년 뒤에는 재단이 사라지도록 한다는 방침도 그 혁신적 방식의 한 사례다. 재단을 아예 사라지게 함으로써, 기부자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다른 대형 자선 재단의 길을 밟지 않겠다는 뜻이다.

워런 버핏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새로 만드는 대신, 게이츠재단을 기부 대상으로 택하면서 “게이츠재단이라면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동기를 밝힌 것도 역시 혁신적 자선사업에 대한 지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혁신적 방식으로 자선 사업을 펼치는 흐름을 미국에서는 ‘벤처 자선’이라고 부르고,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을 ‘벤처 자선가’라고 부른다.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등 역사가 오래 된 전통적 자선 재단의 활동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미국 400대 자선재단에 기부된 금액 추이
미국 400대 자선재단에 기부된 금액 추이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 자선이 전통적 자선과 대비되는 특징은, 영리 기업에서 사용되는 전문적 경영 기법을 자선활동에 대폭 도입해 사업을 효율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벤처 자선의 사업 방식을 보면, 전통적 자선사업과 세 가지 독특한 차별점을 지닌다.

첫 번째는 전문성 강화다. 전문가를 대거 채용하거나 활용해 자선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에 출범한 게이츠재단의 현재 직원 수는 348명이다. 그 수를 앞으로 1~2년 안에 600명까지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게이츠재단의 경우 저개발국 저소득층의 건강, 저개발국 경제개발, 미국 내 교육문제 등 세 가지 영역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건강전문가·경제학자·공교육전문가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 전통적 자선재단이었다면 관련 단체에 기부금을 떼어주는 것으로 자선활동이 끝났다고 여길 법도 한데, 게이츠재단은 전문가를 직접 고용해 끝까지 성과가 나도록 챙기겠다는 것이다.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단체 ‘소셜벤처파트너스’는 외부 전문가를 대거 활용하는 사례다. 이곳은 변호사, 회계사, 벤처기업가, 정보기술 전문가 등 전문가그룹의 개인 기부자를 조직해 그들의 전문 지식이 비영리 사업을 펼치는 기관에 유입되도록 돕는다. 전문가그룹은 기부 대상 기관에 일정한 금액을 기부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한 무료 컨설팅으로 그 기관의 운영을 돕는다. 회계사라면 대상 기관의 회계업무를 돕고, 변호사라면 법률 업무를 돕는 식이다.

미국 10대 자선재단 (2006년 자산규모 기준)
미국 10대 자선재단 (2006년 자산규모 기준)

벤처 자선사업의 두 번째 차별점은 전략적 접근이다. 이들이 자선사업을 벌일 때는 영리기업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처럼 목표 시장과 사람을 정해 놓고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소셜벤처파트너스의 루스 존스 사무국장은 자신들의 타깃 전략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최상층 부자 그룹을 목표 기부자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적 자선재단과 다르다. 우리는 억만장자 그룹이 아니라 중상층의 전문직 종사자를 타깃 시장으로 생각하고 접근한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중상층 전문직 종사자의 소득 대비 기부액 비중은 억만장자의 기부 비중보다 높다는 설명이다.

벤처자선의 세 번째 차별점은 사후 평가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벤처 자선재단은 사회적 투자수익률, 사회적 부가가치, 사회영향평가 등 자선사업의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을 잇달아 개발해 내고 있다. 자선 사업의 성과도 영리 사업의 성과처럼 계량화해 평가할 수 있어야, 사업을 더 효율화할 수 있을 뿐더러 효과적으로 기부자를 모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버츠 기업개발펀드(REDF)는 사회적 투자수익률 모형을 정교화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에스브이티(svt)그룹, 에이치아이피(HIP)인베스터 등 사회영향평가 컨설팅 회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세계적 화두인 ‘혁신’의 물결은 정부 조직과 영리 기업을 거쳐 이제 ‘제3섹터’인 비영리 자선사업에까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다른 두 부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영리 부문에서도 이 물결이 가져다 줄 변화는 적지 않아 보인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자선’에 투자수익 개념 도입
사회·경제적 가치 담아내

사회책임경영 촉진제 기대

자선사업에 전문적 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일이 일반화하면서, 그 사회경제적 가치를 계량화해 평가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에서 널리 사용하는 투자수익률(ROI) 개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까지 감안해 평가하는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모델의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 투자수익률 개념의 정교화에 앞장서 온 로버츠 기업개발펀드(REDF) 쪽은 △자선사업이 창출하는 가치가 현저히 저평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선사업에 투입된 자금은 미래에 그 이상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낳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책임경영이 장기적으로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도, 개별 자선사업 또는 그 일을 하는 활동가들의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일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투자수익률 모델은 자선사업의 성과를 경제적 가치, 사회경제적 가치 및 사회적 가치의 셋으로 나눠 계량화를 시도한다. 이 가운데 경제적 가치는 통상의 기업회계방식인 투자수익률(ROI)로 측정되는 것을 말하며, 사회적 가치는 주민들이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숲을 가꿨다거나 사회 부패수준을 낮췄다는 것과 같이 사실상 계량화가 불가능한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분석 흐름도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분석 흐름도

사회적 투자수익률 모델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 장애인이나 노숙자들을 상대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가동해 상당한 취업 효과를 냈다고 하자. 이때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 창출은 없지만, 정부의 복지 및 실업예산을 절감하는 가치(사회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측정할 수 있다. 사회적 투자수익률 모델은 정부예산 절감액과 같은 사회경제적 가치를 자선사업의 계량적 성과로 인정해, 투입비용에 상응하는 사회적 투자수익률을 계산해 내자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가치를 이렇게 구체적인 수익률로 계산해 낼 수 있게 됨에 따라, 자선사업의 효용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금융시장의 통상적인 자금조달 방식에 접근이 어려운 벤처기업들 사이에 사회적 투자수익률이 높다는 점을 내세워 정부나 공익재단의 지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을 거두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사회적 투자수익률 모델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로버츠 기업개발펀드 쪽은 ‘벤처 자선에 대한 연구’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투자수익률 개념은 사회적 자선활동을 통해 직접 절감되는 정부 예산이라든가 경제적 수입 창출 정도를 반영할 수 있을 뿐,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가치와 혜택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선사업의 성과 평가 모델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보완되면서, 사회책임경영의 환경을 강화하는 촉진제 노릇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대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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