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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머니게임 시대 ‘착한투자’로 돈에 영혼을

등록 2007-05-14 16:59수정 2007-05-14 19:00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회장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회장
[19돌 창간특집] 다른 금융 다른 사회
④ 인터뷰 /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회장
사회책임투자(SRI)는 ‘시장경제’에 ‘윤리’를 접목시키려는 시도다. 기업에 투자하는 돈에 ‘영혼’(환경·사회·지배구조)를 불어넣음으로써 기업의 변화를 유도해, 효율성 추구에만 매달리는 시장경제를 좀더 공평함 쪽으로 다가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사회책임투자가 아직 미풍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서서히 불고 있다.

김영호(67) 유한대학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사회책임투자의 바람을 돌풍으로 만들려는 운동의 맨 앞자리에 있다. 지난달 출범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회장직을 맡은 김 학장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윤리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인 것이다.”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 명제가 실현 가능하다고 김 학장은 자신있게 말한다. 다소 이상에 치우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나, 단기적 수익창출을 중시하기보다는 사회, 경제, 도덕적으로 가치있는 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고 개인의 부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학장을 만나 사회책임투자란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책임투자의 세계적인 흐름과 한국에서의 성장 가능성 등을 들어봤다.

-사회책임투자란 어떤 개념에서 나온 것인가?

=내 돈 1만원을 그냥 투자하지 않고 좋은 기업에 투자한다. 그런 돈이 많으면 결국 좋은 기업이 많아지고 이런 기업들은 안정적인 자금을 모으게 되니까 수익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나도 돈을 더 벌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단기 투기자본이 많이 모이게 되고, 결국엔 도태된다. 이런 단순한 원리가 확대된 것이다.

1980년 이전에는 종교적 동기에서 많이 했고, 1980년 이후에는 환경적 요소가 많이 고려됐다. 2000년에 와서는 경제적 동기에서 투자를 한다. 지속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해야만 배당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엔이 이 문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범지구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윤리적 투자가 가장 수익성 높은 투자
세계 4천조원 규모…한국 5천억원 걸음마
삼성, 지배구조 투명치 않으면 평가 낮아져
연기금을 사회책임 투자 자금으로 유도해야

사회책임투자의 핵심은 이른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원칙’이다. 환경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으로 노동·인권 등의 책임을 다하며 지배구조가 투명한 기업을 말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리스크가 적은 기업에 투자하는 게 내 돈 1만원의 수익성을 가장 높이는 길이다. 결국 돈 내는 사람도 득이고 기업도 득인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나 기관의 돈을 모은 펀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내 돈 1만원을 직접 투자하는 게 아니고 펀드에 맡기면, 펀드는 ‘ESG’에 충실한 기업을 골라서 투자한다. 펀드는 예금자에게 더 많은 돈을 돌려줘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되니까 열심히 좋은 기업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런 사회책임투자 펀드 규모가 세계적으로 4천조원에 이른다. 2천조원인 헤지펀드보다 더 많다. 이건 주로 미국과 유럽의 연기금이 투자되기 때문이다.

펀드들은 주먹구구식으로 투자하지 않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기업을 선별한다. 지금까지는 유엔이 만든 ‘글로벌 책임 이니셔티브’(GRI) 보고서를 기준으로 투자했으나 2009년부터는 기업의 투명성·윤리성을 평가하는 국제표준인 ISO26000에 따라 투자가 될 것이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사회책임투자가 앞으로 세계 금융회사들의 주된 투자기법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금융계의 주류에서도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루에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돈이 2조달러다. 상품은 거래가 안되는데 돈만 왔다갔다 하며 머니게임을 한다. 정말로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요즘은 금융으로 한몫하는 시대다. 금융에서도 펀드형 자본이 많아지고, 그중에서도 사회책임투자 자금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반 펀드들도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쪽으로 자금을 운용한다. 그런 기업이라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다우존스지수도 별도로 지속가능성지수를 개발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것이 앞으로 중요한 트렌드가 될 수 밖에 없다.

-중요한 흐름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에는 미약한 것 아닌가?

=사회책임투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운동과 환경 파괴 상품 불매운동 같은 ‘사회적 책임 소비’(SRC), 노조 파괴 기업을 규탄하는 ‘사회적 책임 노동’(SRL)과도 만난다. 이런 것들이 아직은 주류가 아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만나는 날, 그래서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날, 그날을 꿈꾸는 것이다. 그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닐까. 이 운동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을 완전히 구원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바꿔 놓을 것만은 틀림없다.

전세계 사회책임투자 펀드 규모
전세계 사회책임투자 펀드 규모

-사회책임투자의 활성화는 앞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나

=얼마 전 <일본경제신문>을 보니 국제 사회책임투자 자본이 일본에 대량으로 들어온다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렸다. 최근 한국에선 헤지펀드 자금이 많이 들어온다. 사회책임투자 자금은 장기투자를 하는 반면 헤지펀드는 단기적으로 투자하는 성향이 강하다.

ISO26000이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된다. 문제는 이 가이드라인을 잣대로 해서 국제 사회책임투자 자금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세계적으로 투자와 소비의 기피 대상이 된다.

예컨대 삼성의 경우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으면 ISO26000에서 매기는 기업평가지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기업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자선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공헌 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감점으로 작용한다. 참고로 일본 기업들은 지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에 입각해 기업의 이미지 쇄신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소극적이다. 앞으로 새로운 경쟁에서 한국은 아주 불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어느 정도 활성화돼 있나?

=한국에는 펀드가 12개 정도 있다. 투자금액을 전부 합해봤자 5천억원 정도다. 그러나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내는 기업 수는 겨우 30개 정도다. 무엇보다도 아직 여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 일본은 사회책임투자와 사회책임경영이 최근 2년간 신문의 가장 중요한 토픽 중 하나였다. 서점에 가면 코너가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한가.

=두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사회책임투자의 준거로 사용될 인덱스(기업평가지수)를 만드는 것이다. 유엔의 기준을 참고해서 한국의 기업평가지수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통용되지 않는 것을 만들면 소용없다. 우리 것을 만들어서 ISO26000에 반영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년에 ISO26000 총회를 한국에 유치하려고 한다.

또 하나는 연기금을 사회책임투자 자금으로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스웨덴·노르웨이 등 유럽에 사회책임투자 자금이 많은 것은 연기금이 대량으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새발의 피 수준이다. 그걸 하자면 연기금을 사회책임투자에 투입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이뤄져야 하고, 또 적합한 기업을 선별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육성돼야 한다.

글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사회책임투자(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 환경, 윤리적 측면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방식. 윤리투자, 환경투자, 책임투자, 지속가능투자 등으로도 불림.

이에스지(ESG) 이슈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인권 노동 등), 지배구조(Governance) 문제를 말하며 사회책임투자의 핵심 원칙.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사회기부 등의 차원을 넘어 경제, 사회, 환경 차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업이 노력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주주가치를 포함한 기업가치를 제고시키려는 경영방식.

지아르아이(GRI: Global Reporting Initiative) =유엔 주도로 제정된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성과 보고 기준.

아이에스오(ISO)26000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만들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으로, 2008년에 제정해 2009년부터 시행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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