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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서민 울리는 법 이대로 둘건가] ③ 도미노 파산 부르는 ‘연대보증’

등록 2006-10-16 19:16수정 2006-10-30 10:09

법무부가 16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연 ‘서민법제 개선방안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보증인 보호, 임대차보증금반환보험, 이자제한법 등에 관해 지정토론을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A href="mailto:chang21@hani.co.kr">chang21@hani.co.kr</A>
법무부가 16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연 ‘서민법제 개선방안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보증인 보호, 임대차보증금반환보험, 이자제한법 등에 관해 지정토론을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은행외 대출기관의 개인채무 보증 현황
은행외 대출기관의 개인채무 보증 현황

제2금융권 빚보증 334만명이 180조원

인정상 거절하기도 어렵고 승낙하자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게 보증 부탁이다. 그래도 담보가 없거나 신용이 부족한 서민들이 그나마 돈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이 연대보증이다. 이 때문에 서민의 파산이 또다른 서민을 빚더미에 올려놓는 ‘도미노 파산’이 계속되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 등이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은행을 제외한 대출기관의 올 4월 말 현재 보증인 수는 334만여명, 개인채무 보증금액은 180조원에 이른다. 이들 비은행권 대출기관이 개인에게 대출한 총액 218조원의 82%다. 1인당 평균 보증금액도 5375만원으로, 2003년의 3천만원에서 크게 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대부업체까지 고려한다면 보증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의 경우 2004년 이후 연대보증과 관련한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그 규모를 알 수 없지만, 2003년 말 기준으로 개인 연대보증 건수는 100만여건, 총액은 6조6천억여원이었다.


보증인은 대개 배우자, 부모나 자녀, 친지, 동창, 직장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보증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는 법무부는 “우리나라 특유의 인정주의 탓에 보증 이후의 여러 문제에 대한 법률적·이성적 고려 없이 쉽게 보증을 서 주고 결국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박형상(가명·64)씨는 지난 98년 사업을 하는 부인 친구 남편의 연대보증을 섰다가 보증해 준 이의 사업체 부도로 99년 빚 10억원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박씨는 그 빚을 갚느라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를 팔아야 했고, 평생 교사로 일해서 받은 퇴직금도 모두 날렸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마음고생이 컸다. 박씨는 “당시 대학에 다니던 큰아들은 군대에 가야 했고, 딸은 도피성 결혼을 했다”며 “지금도 집안에서 보증은 물론 돈 얘기만 나와도 분위기가 썰렁해진다”고 말했다.

파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도 많다. 지난해 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대법원의 의뢰로 진행한 ‘개인파산 경제적 분석’ 연구를 보면, 2004~2005년 개인파산자 168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순전히 보증을 잘못 선 탓에 파산 상태에 이른 사람이 조사 대상자의 6% 가량이었다. ‘사업자금 대출 및 보증’을 이유로 파산신청을 한 경우도 30%에 이른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이 추산한 잠재 파산자 규모가 36만~120만명인 점에 비춰 보면, 보증으로 인한 파산자 수는 몇만명을 훌쩍 넘어설 수 있다.

보증 제도는 순수 신용대출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금융기관으로선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할 때 빚을 일방적으로 보증인에게 떠넘길 수 있어 신용도 조사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권정순 변호사(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는 “금융기관의 대출에 따른 위험은 이익에 대한 대가로 금융기관 스스로 떠맡아야 하는데, 보증은 그 위험을 보증인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이라며 “이런 후진적 금융관행은 금융기관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보증에 따른 줄도산 등 피해 사례가 급증하자 보증제도 폐지·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나, 보증 폐해를 줄이려는 정부와 국회의 대책 마련은 더디기만 하다. 법무부는 보증과 관련한 민법 개정안을 2004년 10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전히 심사 중에 있다. 또 올 6월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히고도 16일에야 첫 공청회를 열었다.

최근 은행들은 신용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업무량이나 책임부담이 큰 연대보증 대출을 크게 줄이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서민들은 오히려 은행 외의 대출기관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비은행권 대출기관에서도 보증에 의한 대출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표 참조) 보증으로 인한 연쇄파산 등의 폐해가 언제든지 재연될 위험은 여전한 것이다. 심상정 의원은 “외환위기 이후 보증 문제의 심각성과 본질이 달라진 것은 없다”며 “보증제도가 적절히 개선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다른나라에선
스위스 보증의사 표시 서면으로
독 일 전담은행이 보증서 발행

개인이 돈을 빌릴 때 보증이 우리처럼 관행화한 나라는 일본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에서 보증인을 요구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500만엔(약 4천만원) 미만의 소액 가계대출에서 대출 신청인의 신용이 취약할 때다. 특히 은행은 신용보증회사에서 발급한 보증서를 담보로 대출하고 있어 실제 연대보증인을 세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스위스 역시 연대보증 제도를 두고 있지만 보증의사 표시를 반드시 서면으로 하고 보증 한도액을 표시하는 등 보증인을 보호하는 제도가 발달해 있다. 법인과 달리 개인이 보증을 설 경우 금액이 2000스위스프랑(약 150만원) 이상이면 공증인이 작성한 문서를 요구한다. 또 혼인한 사람이 보증계약을 맺으려면 서면으로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현재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의 법안과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증제도 개선방안은 모두 스위스 제도를 본보기로 하고 있다.

미국은 신용평가 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대출심사 때 채무자의 신용을 분석해 대출한도를 미리 결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대출이 이뤄진다. 영국 금융기관들은 대부분 보증 없는 신용대출을 하고 있으며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 때는 구입하려는 주택을 담보로 한다. 독일은 통상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이뤄지고 있으며 제3자를 연대보증인으로 세우는 사례는 없다. 다만 담보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 보증 전담은행으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아 담보로 이용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보증한도 낮추고 절차는 까다롭게
개선 방향은

보증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한다. 궁극적으로 폐지돼야 마땅하지만 당장 폐지하기는 어려운 만큼 가능한 한 보증 과정을 까다롭게 하고 보증 한도를 낮춰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법무부는 보증계약을 맺을 때 금융기관이 미리 채무자의 신용상태를 보증인에게 알리도록 하고 보증인이 부담할 보증 최고액도 특정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런 규정을 어긴 보증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법무부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회의실에서 공청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보증인보호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은 이달 중 관계부처 의견 조회를 거쳐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지난달 25일 보증인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법안에서 보증 의사를 반드시 문서로 표시하도록 하고,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의 서면동의를 받도록 했다. 보증 절차를 까다롭게 해 보증 부탁을 거절할 명문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심 의원은 또 불가피하게 보증을 서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증 한도를 2천만원으로 제한했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정책·제도팀장은 “금융기관이 어느 보증인에게든 채권 전액을 갚도록 청구할 수 있는 연대보증 제도는 선의의 제3자를 해칠 개연성이 농후할 뿐만 아니라 시대와 동떨어진 감마저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연대보증 제도를 폐지하고 보증기관에 의한 보증으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최성경 단국대 교수(법학)는 이날 공청회에서 “입법 취지에 공감하지만, 물적 담보력이 없는 서민들이 오히려 돈 구하기가 막막해지는 등 역기능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성하웅 은행연합회 팀장은 “규정 위반 때 보증계약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만큼 과태료 처분 등으로 벌칙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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