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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태영건설에 시장 떠는 이유…3개월마다 돌아오는 ABCP 뭐길래

등록 2024-01-03 17:09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모습. 연합뉴스

태영건설 위기가 태영건설 선에서 끝나면 위기가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태영건설 위기가 단기 자금조달시장 불안으로 옮겨갈 때다. 정부와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단기 자금조달시장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이다. 구조는 이렇다. 부동산 개발 사업자(주로 시행사)에 자금을 댄 금융회사(대주단)는 대출 채권을 페이퍼컴퍼니인 자산유동화회사(SPC·페이퍼컴퍼니)에 넘긴다. 이 회사는 이 채권을 토대로 기업어음(ABCP)을 찍어 투자자에게 판다. 투자자는 일반 기업부터 시작해서 개인까지 다양하다. 시행사가 빌린 돈의 최종 출처는 일반 투자자란 얘기다.

ABCP의 특징은 일반 기업어음과 마찬가지로 만기가 짧다는 점이다. 통상 3개월이다. 시행사가 100억원을 대주단에서 빌렸다면, 이 100억원은 무수히 많은 소액 투자자의 돈이고, 그 투자자도 3개월마다 바뀐다는 뜻이다. 돌려막기(차환)가 계속 일어나는 셈인데, 시장이 불안해져 돌려막기가 중단되면 수많은 투자자들은 원리금을 떼이고 기업들은 자금난에 빠져 흑자도산하는 곳도 나올 수 있다. 이 순간이 바로 ‘위기’가 된다.

돌려막기가 불안정해지는 그 순간은 왜 올까. 신용 보강(매입 확약)에 나선 금융회사에서 문제가 생길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신용 보강은 주로 증권사의 몫인데, ‘태영건설 사태’에선 시공사인 태영건설이 직접 보강에 나선 경우가 많다. 스스로 보증에 나서면서 위험을 떠안을 정도로 공격적 사업을 펼쳤다는 얘기가 된다. 태영건설을 믿고 PF-ABCP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불안에 빠지고, 이 불안은 또 다른 불안으로 이어져 PF-ABCP 시장 전반이 얼어붙게 되는 것이다. 신용보강에 나섰던 증권사도 재무부담이 늘면서 돈을 움켜쥐게 된다.

이런 양상은 사실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 때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위기는 강원도가 PF-ABCP 2050억원에 대한 지급 보증을 철회하면서 시작됐다. ‘지방정부 보증도 믿을 수 없다’는 신호가 시장을 강타했던 것이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는 규모가 크다기보단 신용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어서 파급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아직 태영건설발 PF-ABCP 시장 불안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불안은 거래량 급변동에서 그 조짐이 드러난다. 신용등급 A1 기준 PF-ABCP 거래량은 지난해 12월 첫째주 약 2조8천억원에서 지난해 말 2조2천억원 정도로 줄긴 했으나 2조원대는 웃돌고 있다. 다소 줄긴 했으나 연말이란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시장 참여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정혜진 연구원은 “계절성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 올해 들어서는 아직 거래일이 이틀밖에 되지 않아 시장 분위기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큰 동요는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지만 실제 균열에 대비해 정부가 준비해 놓은 돈은 있다. 그 규모가 수십조원에 이른다. 이 자금은 돌려막기가 중단될 때 PF-ABCP를 직접 매입할 때 쓰인다. 산업은행·증권금융 등에서 추렴해 이 자금을 조성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전후로 이 자금이 시장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를 거치면서 학습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자금 상황이나 유동성을 자체적으로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 같은 경우가 또 나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아직은 막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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