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은행 횡재세’ 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자칫 대규모 횡재세 부과로 은행들의 건전성이 나빠져 금융 시스템 전체가 취약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5일 금융위원회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정부와 여당은 은행에 일종의 ‘횡재세’를 부과하기 위한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고 있다. 횡재세란 시장 상황의 변화에 힘입어 통상적인 수준을 넘는 이익을 올린 기업들에 부과하는 세금을 일컫는 용어다. 국내에서는 법인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형식을 포함해 은행들의 서민금융보완계정 출연금을 늘리는 방안 등이 모두 검토 대상에 올라와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횡재세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던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급선회하는 모양새다. 고물가·고금리 국면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표심이 악화하자 정치권에서 은행 횡재세를 카드로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이 고금리에 힘입어 저금리 시절보다 더 많은 이익을 올렸으니 이를 일부 환수해서 서민 고통을 덜어주는 데 쓰겠다는 논리다. 정치권에서는 유럽 일부 국가들이 횡재세를 부과한 선례가 있다는 점도 주요 근거로 든다.
문제는 횡재세 규모와 부과 방식에 따라 부작용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은행권을 향한 투자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흔들릴 여지도 있다. 특히 은행권의 손실흡수 능력이 줄면 국가 경제 전체의 거시건전성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국외 사례에서 이미 불거졌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예로 지난 8월 이탈리아는 은행의 최근 연간 순이자수익(NII)의 40%를 일회성 세금으로 걷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발표 직후 이탈리아 주요 은행들의 주가는 하루 만에 5.9∼10.8% 폭락했다. 결국 정부가 횡재세 규모를 기존에 예상됐던 규모의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밝힌 뒤에야 주가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향후 거시경제 환경을 고려하면 횡재세 도입으로 인한 리스크를 가벼이 볼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고금리·저성장 국면이 계속되면서 빚을 못 갚는 차주들이 늘어날 공산이 높다고 본다. 은행들이 빌려줬다가 떼이는 돈이 계속해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한국 금융위를 포함한 전세계 주요 금융당국은 이런 리스크에 대비해 은행들이 더 많은 자본을 쌓아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하도록
지도해왔다. 횡재세는 이런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 횡재세 부과 움직임이 일 때마다 이런 이유로 반대 의견을 표명해왔다.
금융위 내부에서도 우려가 크다. 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은행들이 내년 이후 상황에 잘 대비하도록 이끌어야 할 때인데 (횡재세를 부과하자는) 얘기가 나올 때는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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