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저작권 조각투자업체인 뮤직카우의 서울 마포구 본사 모습. 연합뉴스
2030년이 되면 조각투자 시장이 367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최근 보고서에서 밝혔다.
그때쯤이면 이른바 토큰증권(ST) 자산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세계경제포럼)도 나왔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세상의 모든 실물자산과 지식재산권(IP)을 토큰증권 형태의 조각투자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 소속 걸그룹 뉴진스만 따로 떼내 투자상품으로 만들 수 있고, 연간 1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음악 저작권 시장이 금융과 결합하면 두세배로 커질 것이라는 업계 경영자의 발언도 있었다. 금방이라도 관련 상품이 쏟아지고, 너도나도 조각투자에 나서는 세상이 열릴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음악 저작권 조각투자업체 뮤직카우 이야기를 해보자. 매출액을 웃도는 광고 마케팅 지출에 힘입어 질주하던 이 회사에 급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해 초쯤이다. 당시 뮤직카우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100만명 회원을 확보하는 등 음악 저작권을 새로운 재테크 대상으로 급부상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가 투자자에게 판매한 ‘저작권 조각’의 성격이 자본시장법의 ‘증권’에 해당하는데도 법에서 정한 발행 절차를 지키지 않고 투자자 보호장치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뮤직카우의 사업모델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작곡가·작사가·가수·음반제작자 등과의 협상을 거쳐 저작권을 매입한다. 뮤직카우는 미래에 유입될 저작권료의 배분에 참여할 수 있는 수익 청구권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경매 방식으로 판매한다. 예를 들어 100만원에 매입한 저작권을 100개의 청구권(개당 1만원)으로 만들어 경매에 부쳤고, 개당 1만5000원에 낙찰됐다고 해보자. 뮤직카우는 개당 5000원(1만5000원-1만원)씩, 총 50만원의 경매 차익을 얻는다. 투자자들 간에 청구권을 거래할 수 있는 유통 플랫폼을 운영하면서는 매매 체결 시 수수료를 받는다.
대대적 광고 집행으로 회원 수를 늘려가던 중 금융감독원에 민원이 들어갔다. 투자자의 청구권 권리와 투자금이 안전하게 관리되는지 투명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뮤직카우 스스로 발행과 유통을 겸하는 등 시장 감시체계가 없어 불공정 거래 위험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뮤직카우가 고안한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이 ‘증권’에 해당되는지를 놓고도 논란이 크게 일었다.
2022년 4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뮤직카우 투자자들이 저작권료 획득이라는 공동사업에 투자하고 있고, 사업운영자인 뮤직카우의 수행 결과에 따른 손익을 분배받는다는 점에서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증선위는 뮤직카우에 △회사의 도산 위험으로부터 투자자 권리와 재산을 절연하는 방안 마련 △투자자 예치금 외부예치 △청구권 발행시장과 유통시장 분리 및 이해상충 방지 △시장감시체제 마련 등을 요구했다. 그 뒤 뮤직카우는 금융당국으로부터 규제 샌드박스(신기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일정기간 규제 면제) 업체로 지정받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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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현재 조각투자를 제도권 증권시장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 중이다. 미술품과 한우 등 5개 조각투자업체의 서비스를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하고, 증권신고서 제출 시 투자상품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그러나 실제 상품 출시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미술품 조각투자업체 투게더아트가 1호 상품 출시를 노리고 지난달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20여일 만에 자진철회했다. 길은 터주되 심사를 까다롭게 하겠다는 당국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이 회사는 7억9000만원의 투자계약증권(만기 5년, 1회에 한해 5년 연장 가능)을 발행해 미국 작가 스탠리 휘트니 작품 ‘스테이 송 61’을 매입할 예정이었다. 작품 매도자는 모회사인 케이옥션이다. 투게더아트 쪽 인력이 작가 작품들의 과거 거래 사례를 조사하고, 외부 감정회사의 평가와 회계법인의 검토를 거쳐 거래가격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증권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가격 산정 객관성과 투명성, 모회사와의 거래에서 의사결정의 독립성 등을 지적했고, 이에 투게더아트 쪽은 일단 신고서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감정평가사에게 자문을 해준 이가 매도자이자 모회사인 케이옥션 직원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해상충의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미술품 조각투자업체 열매컴퍼니는 예정된 증권신고서 제출을 연기했다. 미술품 가격을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업계에서는 미술품 가격 평가에는 주관적·자의적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다 감정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마저 적어 금융당국 눈높이를 맞추기가 만만찮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편 한우 조각투자 플랫폼 뱅카우 운영사인 스탁키퍼의 경우 심사 통과 전망이 낙관적인 편이다. 스탁키퍼는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농가로부터 송아지를 산 뒤 농가에 사육을 위탁한다. 성장한 소를 경매시장에서 팔아 차익이 나면 이를 농가와 투자자에게 일정 비율로 정산해주는 식이다. 한우나 송아지는 시장에서 형성된 시세가 있기 때문에 가격 산정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조각투자 활성화, 특히 토큰증권 발행을 통한 급속한 시장 확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증권사와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조각투자업체들과 협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토큰자산 시장이 열리려면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등 법 개정과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당국은 제도 기반을 갖추기에 앞서 시장이 기대감만으로 앞서갈 경우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정보가 부족하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불공정 사기행위 같은 것들이다. 실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남부지검은 조각투자 방식으로 미술품을 공동소유할 수 있다며 투자자들에게 가상화폐를 발행한 뒤, 시세조종으로 4000여명에게 피해를 입힌 일당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발행한 투자증서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자본시장법의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적용했다. 이 사건은 2020~2021년에 발생한 것이다. 조각투자 붐을 타고 유사범죄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당국이 지속적으로 투자자 주의 메시지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수헌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