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부부 합산 소득이 1억원을 넘는 사람은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없다. 집값이 6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이 정책자금으로
고소득층의 ‘내 집 마련’을 돕고 가계부채를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해당 상품의 공급을 돌연 중단한 것이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무마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13일 관계기관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금융위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올해 1월 말 출시한 주택담보대출 정책금융상품이다. 집값이 9억원 이하이기만 하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한 없이 최대 5억원 빌릴 수 있다. 앞서 금융위는 신청액이 공급 목표액(39조6천억원)을 넘어도 내년 1월까지는 공급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달 하순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의 공급은 전면 중단된다. 기존의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일반형과 우대형으로 나뉘는데, 일반형은 소득과 상관없이 이용 가능하다. 우대형은 주택가격이 6억원 이하인 동시에 부부 합산 소득이 1억원을 넘지 않아야 이용할 수 있다. 일반형은 오는 27일부터 접수가 중단되며, 우대형은 원래 계획대로 내년 1월까지 공급된다.
유주택자의 특례보금자리론 이용도 앞으로는 제한된다. 이제까지는 이미 집을 보유한 사람이 새로 집을 사는 경우에도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었다. 기존 주택을 3년 안에 처분한다는 조건만 지키면 됐다. 김태훈 금융위 거시금융팀장은 “주금공의 한정된 지원 여력을 저소득·실수요자에게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내년 1월까지 공급한다는) 약속을 지켜야겠지만 부득이하게 조정했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발표에서는 번복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책 실패론을 무마하려는 긴박함이 읽힌다. 앞서 한겨레는 올해 1∼7월 특례보금자리론
유효신청액의 23%(7조2116억원)가 세전 연소득 9천만원을 초과하는 차주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역마진’을 떠안으면서 제공한 정책상품이 고소득층의 ‘내 집 마련’에 쓰였다는 얘기다. 이는
가계대출 증가세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 내부에서조차 정책 실패론이 제기된 이유다. 이에 김소영 부위원장은 한겨레 보도 직후 “기존보다는 더 관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데 따른 위기의식도 작용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지난달 한 달간 가계대출은 6조2천억원 불어났다. 올해 4월 증가세로 전환한 뒤로 증가폭이 계속해서 확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6조6천억원 늘면서 7월(5조6천억원)에 비해 증가세가 더 가팔라졌다. 특례보금자리론 등의 영향으로 수도권 집값이 반등하자 주택 매수 심리가 확산돼 민간에서 취급하는 주담대도 늘어나는 형국이다.
금융위는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디에스알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았던 50년 만기 주담대의 고삐를 죄기로 한 게 사실상 전부다. 금융위는 앞으로 디에스알 한도를 산정할 때 적용되는 만기를 40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실제로 50년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확인된 경우에만 50년 만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변동금리 대출의 경우 디에스알 한도를 산정할 때 가산금리 1%포인트를 부과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한다. 김태훈 팀장은 “쉽지 않은 작업이고 언제까지 완료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