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회장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인플레이션 우려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이 텔레비전 스크린에 비치는 가운데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들어 미국 금리 상승 속도가 빨라지더니, 이제 대표적인 시장금리인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2.4%를 넘나드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작년 말보다 1%포인트나 높은 수준이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하게 정책금리를 내리던 2020년 4~5월과 비교하면 거의 2%포인트나 오른 셈이다. 단기금리는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단기 시장 금리의 대표 격인 2년물 미 국채 금리는 작년 여름 0.1% 대에서 2.4% 위로 올라왔다. 이에 따라 장단기 금리가 역전돼 주식 투자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이 나타날 때 왜 불안해할까? 금리 역전이 나타난 후 경기침체가 뒤따라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약 40년간 4차례의 의미 있는 금리 역전이 나타났는데, 시차는 조금씩 달랐지만 예외 없이 심한 경기침체가 동반됐다. 당연히 증시도 경기침체와 맞물려 오랜 기간 부진한 모습을 이어갔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장에서 적용되는 금리가 높은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내일 당장 도산할 확률이 없는 기업이라고 해도, 5년, 10년 후라면 그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기업이라도 1년 만기로 발행하는 채권보다는 3년이나 5년 만기 채권의 금리가 더 높게 형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현상에 변화를 주는 것은 주로 통화정책이다. 과거 장단기 금리 차이의 급격한 변화를 주도한 건 주로 정책금리 변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기금리였다. 10년물과 2년물 금리가 역전된 1980년대 후반과 2000년, 2000년대 중반 모두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인 2019년 금리 역전의 이유도 정책금리 인상이었다. 즉 금리 역전은 대부분 정책금리 인상에 따른 단기금리 상승 시기에, 장기금리가 덜 오르거나 떨어지면서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금리 역전 후 반복된 경기침체는 미국 중앙은행의 정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주 경기침체 방어에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일각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08년 중 나타난 강한 경기침체가 각각 저축대부조합 사태,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서브프라임 사태 등 예외적 사건에 따른 것으로, 금리 인상이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라 주장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의 경우에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필자 역시 연준의 실패라고 판단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기침체를 불러온 버블 붕괴의 원인은 결국 버블 그 자체이며, 연준은 그 버블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거나 방조자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는 이번에도 연준이 경기침체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고물가는 근본적으로 코로나19와 선을 넘은 재정정책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준 역시 물가 전망에 실패해 경기침체 가능성을 높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시장이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늘 그렇듯 시장의 판단도 틀릴 수 있다. 앞으로 연준이 체계적 긴축에 성공해 경기를 연착륙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민간부채 문제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고, 광범위한 파생상품 시장 문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물가가 내려가기 시작하고 경제지표의 안정성이 확인되면 증시는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표 확인과 연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상반기 중에는 미국 경기와 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받는 주요국 증시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