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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전세대출 규제 “할수도 안할수도…” 정부 딜레마

등록 2021-09-08 16:18수정 2021-09-09 02:37

저금리에 전세대출 받고 여윳돈은 투자하는 행태 문제의식
서민 실수요자와 구별 어려워 뾰족한 대책 못 찾아
시중은행의 대출광고. 연합뉴스
시중은행의 대출광고. 연합뉴스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 강화 여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최근 급증하는 전세대출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투자 열풍과 관련 있다고 보고 규제 강화 방안을 검토하면서도, 자칫 무주택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을 막을 부작용도 예상되는 터라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에 정부가 추석 이후 발표할 가계대출 관리 추가 대책에는 새로운 전세대출 규제가 포함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전체적인 가계대출 총량관리 과정에서 전세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은행의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질 여지는 있다.

8일 <한겨레>가 5대 은행(케이비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농협)의 가계대출 현황을 파악해보니, 주택담보대출이 올해 들어 4.1% 증가하는 동안 전세자금대출 증가율은 이보다 4배 가까이 높은 14%로 나타났다. 이들 은행의 8월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93조4148억원으로 지난해 12월말(473조7849억원)보다 19조6299억원 늘었다. 전세자금대출의 8월말 잔액이 119조9670억원으로, 같은 기간 14조7543억원 증가했다.

전세대출 급증세는 수년 전부터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2016년 20조원 가량이던 전세대출 규모가 4년여 만에 160조원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국은 전세대출의 폭증세 원인이 단순한 주거 수요 확대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과거에는 가진돈을 모두 끌어모은 뒤 부족한 금액만큼 대출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여윳돈이 있어도 일단 전세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낸 뒤 남는 돈으로 주식 등 자산투자를 하는 경향이 늘었다는 얘기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져온데다 전세대출 금리가 2%대로 신용대출보다 싼 영향이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 금융위 핵심 관계자는 “전세제도에 큰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5년 사이에 전세대출이 급증하게 된 데는 전세금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현재도 다주택자나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 등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융위는 여기에 추가 대출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뽀족한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지난 7월부터 단계적으로 강화 중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전세자금대출 일부를 포함시키는 식으로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 경우 무주택 실수요자들도 함께 피해를 볼 수 있어 정부가 선뜻 추진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전세대출을 받아놓고 여윳돈으로 투자하려는 사람만 골라 규제를 하고 싶지만 그들을 구별해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전반적인 금융 안정보다 주택시장 안정이란 목표에 금융정책이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이에 새로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가계 부채 규제 강화를 예고한 데 이어 추석 이후 발표될 추가 대책에도 전세 대출 관련한 의미있는 방안이 담길 공산은 낮다. 현재까지는 전세대출뿐만 아니라 집단대출, 정책모기지 등을 포함해 전체적인 대출 총량 관리를 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동훈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전날 한국금융연구원 토론회에서 “지난해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많이 늘었지만, 올해는 전세대출과 정책모기지, 집단대출이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이 3개 대출이 모두 실수요 대출이어서 정책적 진퇴양난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2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이 1억5천만원만 받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차주들이 고통을 분담하도록 제도를 운영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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