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감사원이 민원 처리 과정의 업무태만을 이유로 금융감독원 직원의 중징계를 요구하면서 민원 사항을 일부 왜곡해 징계 근거로 삼은 정황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해당 민원의 주 내용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아니라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한 회사의 불공정거래에 관한 것이었으며, 민원에는 옵티머스 사기행태에 대해 조사에 착수할 정도의 구체적인 단서가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한겨레> 취재 결과, 감사원은 지난달 5일 발표한 ‘금융감독기구 운용실태 감사결과’에서 해당 민원 처리를 문제삼으면서 동일 민원인이 제기한 민원이 2개였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4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서 금감원이 2019년 2월27일 접수한 ‘1차 민원’은 ○○회사가 같은 해 2월20일 특정 회사(해덕파워웨이) 주식 1170만여주를 자기자금으로 매수하겠다고 한 공시가 허위라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또 금감원이 그해 3월19일 금융위원회로부터 이첩받은 ‘2차 민원’은 옵티머스가 해덕파워웨이로부터 270억원을 투자받은 후 다른 회사를 통해 해덕파워웨이를 무자본 인수합병했고, 이 과정에서 횡령이 발생했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추가됐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그러면서 민원에 옵티머스의 사기행태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어서 이때 제대로 조사했으면 투자자 피해를 미리 막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시기에 금감원에 해당 민원인이 제기한 민원은 모두 4건이었다. 4건 모두 해덕파워웨이의 불공정거래에 관한 내용이라는 게 이 사안을 아는 관계자들의 말이다. 중징계 대상이 된 금감원 직원은 민원 4건을 종합해본 결과 해덕파워웨이 관련으로 판단했으며, 이 건을 검찰이 수사 중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확인한 뒤 민원을 종결 처리했다는 것이다.
다만, 한 민원에 옵티머스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주된 내용은 해덕파워웨이와 관련한 것이었고, 감사원이 밝힌 것과 달리 제보 내용이 구체적이지는 못했다고 한다. 특히 옵티머스 펀드사기의 핵심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관한 내용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서 해덕파워웨어 관련 민원 2개를 누락함으로써 민원이 옵티머스 관련인 것으로 오해하도록 하고, 옵티머스 관련도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것처럼 적시함으로써 금감원 직원의 중징계 근거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초까지 금감원 부원장을 지낸 원승연 명지대 교수는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 적시된 2개 민원 외에도 추가적으로 민원 2건이 더 있었다면, 감사원이 왜 2개의 민원을 보고서에서 제외했는지에 대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며 “만약 감사보고서가 민원 내용을 왜곡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2개 민원을 제외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감사원은 불공정 감사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감사원은 금감원이 지난해 4~5월 옵티머스에 대한 서면검사에서 펀드자금 대표이사 개인 계좌 이체, 펀드 돌려막기 등의 사실을 확인하고도 현장검사를 지체하고 금융위·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담당 팀장과 국장·부원장보에 대해 ‘주의’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건의 경우 감사원이 당시 상황과 금감원 검사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제재를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감원은 2019년 하반기 라임 사태가 터진 뒤 또다른 부실 자산운용사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그해 11월부터 3개월간 52개 자산운용사의 펀드 운용상황을 점검했다. 이어 지난해 3월 10개 운용사를 집중관리대상으로 선정하고 4~5월에 옵티머스를 포함한 5개 운용사에 대해 서면검사를 실시했다. 애초 옵티머스는 라임과 달리 복잡한 펀드 구조가 아니었고 언론에 문제가 보도되지도 않았으며 고객들에게도 3% 안팎의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어서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었으나 개인 투자금이 많은 점을 이상히 여겨 포함시켰던 것으로 알려진다. 검사국은 5월28일 종료된 서면검사에서 범죄 혐의를 의심해 6월22일 현장검사를 결정하고, 혐의자에 대한 거래 분석과 허위서류 검토 등을 실시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범죄 행각이 들통날까 우려한 옵티머스 경영진이 6월18일 전격적으로 펀드 환매정지에 나서자 하루 뒤인 19일 현장검사에 착수했던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당시는 감사원이 금감원 감사를 위해 사전자료 요구를 하고 있었던데다 라임 사태로 난리법석인 상황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 직원들이 일부러 시간을 끌다가 문제를 키웠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민원 처리 건과 현장검사 지체 건 모두 금감원 직원들의 주장을 감사결과에 반영해서 적절한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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